민속·전통

[스크랩] 우리술의 역사

바보처럼1 2006. 3. 29. 23:22
우리나라 민속주 역사 이야기   

    

 

 

 

민속주의 역사

          -상고시대: 
술의 재료는 곡류였고 곡류가 스스로 삭혀져서 술이 
만들어지거나, 곡식을 씹어서 침으로 당화 시켜 빚었거나, 
곡식을 물에 담갔다 싹을 키워 그것을 으깨서 당화 한 뒤에 
발효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삼한시대: 
전통 곡주가 정착되었고 우리 생활에 술이 보편화되었다. 
고려 전 까지는 탁주와 청주가 정착되어 있었으나 고려 
후기에는 몽고, 원과의 교섭이 활발해지면서 외래주의 
유입으로 증류주가 정착되게 되었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급속도로 발전한 민속주는 조선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고, 일제 시대를 거쳐 서양 술들의 유입으로 
더욱 다양화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각 가정에서 자가 양조였고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으나 
1909년 주세법이 발효되어 생산량에 따라 과세하는 간접세가 생긴 후 5차에 걸친 주세령의 개정으로 
1934년에는 자가용 술 면허자가 완전히 없어졌다. 천업으로 여겨왔던 주조업에 양반 계급이 다투어 
종사하게 됨에 따라 주조업자가 비대해지고 술의 품질이 주세를 위하여 규격화 되어감에 따라
명주가 사라지고 심한 주세에 백성들의 원성 높아졌으며, 밀주의 성행과 일제의 단속의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전통주는  차츰 그 자취를 감추게 되고 풍류가 깃든 조상의 
술 빗기도 없어졌다. 

-현재:  
해방 후 만성적인 식량 부족으로 해마다 외국산 양곡을 
도입해야만 했던 실정에서 쌀이 아닌 비곡주 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오다가,  1971년에 쌀막걸리, 쌀약주 등이 
재등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술 정책에 국가가 관여하고 
통제함으로써 고유의 민속주는 자취를 감추게 된 아쉬움이
있게 되었으나 1985년 문화재관리국에서는 무형무화재
지정조사보고서 제 163호로 <전통민속주>를 펴내고 그 중 
46종을 선정하고, 다시 13종목을 추려서 서울의 문배주, 
충남 면천의 두견주, 경주의 법주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제조 기능 보유자를 인간문화재로 인정하였다.  
또 13종 중 10종은 안동 소주, 진도 홍주, 김천 과하주, 
전주 이강주, 서울 삼해주, 김제 송순주, 한산 소곡주, 
경기 동동주, 중원 청명주, 제주 오메기술등이 지정 
문화재로 지정 받았다. 또 농림 수산부는 1994년 5월 
송화 백일주, 금산 인삼주, 옥향주, 계룡 백일주, 등 
4가지 전통주의 기능 보유자를 민속주명인으로 지정하여 
기능 전수자금과 기능 공장 건립 자금을 지원해주는 
특혜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 주점의 역사

우리나라 주점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에 나타났다. 고려
성종때 개성에 처음 주점을 두고 주점에 성례, 악당등 아취
있는 이름을 붙이고 문인이나 선비들이드나드는 고급주점을
관설. 또한, 숙종때도 개경에 좌우 주점을 두고각 주와 현에
주점을 내었는데, 이러한 관설주점은 당시 해동통보, 동국
통보등 화폐를주조하여 유통시키기 위한 유인책. 결국
화폐통용의 목적으로 관설주점을 개설한 것이다. 주점이
본격적으로 정착된 것은 역시 조선조 후기부터 농업발전으로
잉여생산이 발생하고 상품의 유통이 활발해짐에 따라 한말에
이르러서는헌주가, 소주가 병주가, 주막, 목로술집 내외술집,
색주가,모주가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가져온 곳: [대나무통술 시원한 댓잎향을 "대숲바람"]  글쓴이: 세발달린새 바로 가기
출처 : 대나무통술 시원한 댓잎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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