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뜨락

거미의 방

바보처럼1 2007. 10. 29. 18:01
 

거미의 방

        송 종 찬

 

 

거미는 몸을 풀어 선을 만들고

얽힌 선 위를 오고 가지만

그물에 발이 걸리지 않는데

나는 내가 만든 인연에

자주 발이 걸려 넘어졌다

거미는 가로 세로 선을 엮어

사각형의 면을 만들지만

그 함정에 빠지지 않는데

나는 내가 만든 벽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지난밤 울부짖던 태풍에

거미줄은 가늘게 흔들렸을 뿐

찢어지지 않았는데

나는 기울어진 전봇대처럼

불안한 잠의 수면 위를 오르내렸고

 

―신작시집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작가)에서

 

 

▲1966년 전남 고흥 출생

▲1993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리운 막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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