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아래서
권 혁 웅
겨울비가 손가락을 짚어 가며 숫자를 센다
더딘 저녁, 누군가를 오래 세워 둔 적이 있었나
여러 번 머뭇거린 뒤꿈치가 만든
뭉개진 자리가 나란하다 창밖을 서성대던
들쑥날쑥한 머리통들 가운데 몇몇이
어느새 방 안에까지 들어와 있었나
검게 엉킨 실타래들을 풀지 못해
한 벌 수의도 지어 주지 못했나
나 간다 이번엔 정말 간다고
카운트다운을 하는 겨울비, 반에서
반의 반으로 다시 반의 반의 반으로
끊임없이 숫자를 줄여 가는 저 겨울비
―신작 시집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민음사)에서
▲1967년 충북 충주 출생
▲199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등
▲현대시동인상, 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수상
2007.10.20 (토) 0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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