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뜨락

처마 아래서

바보처럼1 2007. 10. 21. 20:51
 

처마 아래서

        권 혁 웅

 

 

겨울비가 손가락을 짚어 가며 숫자를 센다

더딘 저녁, 누군가를 오래 세워 둔 적이 있었나

여러 번 머뭇거린 뒤꿈치가 만든

뭉개진 자리가 나란하다 창밖을 서성대던

들쑥날쑥한 머리통들 가운데 몇몇이

어느새 방 안에까지 들어와 있었나

검게 엉킨 실타래들을 풀지 못해

한 벌 수의도 지어 주지 못했나

나 간다 이번엔 정말 간다고

카운트다운을 하는 겨울비, 반에서

반의 반으로 다시 반의 반의 반으로

끊임없이 숫자를 줄여 가는 저 겨울비

 

―신작 시집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민음사)에서

 

 

▲1967년 충북 충주 출생

▲199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등

▲현대시동인상, 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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