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것들

[스크랩] 몬트리올의 지하도시, 언더그라운드

바보처럼1 2006. 4. 7. 23:55

몬트리올로 정착지를 결정하고 가장 큰 고민이 추운 겨울이었다. 한겨울이면 영하 20도 이하로도 내려가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걱정하면서도 토론토보다 집값이 싸고 이민자에게는 불어를 생활비까지 줘가며 가르친다기에 일단 와서 1-2 년 살아보고 여차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할 생각으로 사전답사 한 번 없이 비행기를 탔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하고 용감했다.

 

하지만 만 4 년 가까이 살아보니 추우면 추운대로, 눈이 많이 오면 오는대로, 이 몬트리올이라는 도시는 나름대로 살아남을 방법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또는 '언더그라운드 시티(Underground city)' 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보행보도.

 

1962년 새로 짓는 큰 건물(Place Ville Marie)과 몬트리올 기차역을 연결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언더그라운드의 건설은 그 후로도 57차례의 터널공사 끝에 연장길이가 무려 30km 에 달하는 지금의 지하통로를 완성시켰다. 안에는 1,700 여개에 달하는 상점이 들어있으며 여길 거쳐가는 보행자의 수는 하루 평균 50 만명, 몬트리올이 광역시까지 모두 합해도 인구 350만명에 불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내에 볼 일 있는 사람은 거의 다 언더그라운드를 이용한다고 할 수 있다.

 

 

<몬트리올 시내의 지하철 노선표>

 

이 길은 지하철 그린라인과 오렌지 라인이 평행으로 관통하는 도심의 지하 이곳저곳을 연결한다. 단순히 역과 역사이 뿐만 아니라 시내의 큰 건물과 거의 연결되어 있어 밖으로 나가지않아도 웬만한 볼일은 다 볼 수 있을 정도. 차도만 빼면 지상의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변덕스런 몬트리올 날씨의 구애를 받지않으니 보행자의 천국인 셈이다.

 

이곳에서 지난 2월 몬트리올에서는 특이한 경주가 열렸다. 제1회 '몬트리올 언더그라운드 축제(Montreal's underground walkway celebration)'의 일환으로 5km 구간을 달리는 것이다. 지하철'필(Peel)'역을 출발해서 "쁠라스 데 쟈(Place-des-arts)'역으로 들어오는 지하구간인데 나도 언더그라운드를 구석구석 다녀본 적이 없아 이 참에 한 번 탐험해보기로 했다.

 

<사진은 언더그라운드 경주 홍보사이트에서>

 

먼저 시작한 지점은 '쁠라스 데 쟈(Place-des-arts)'. 이곳은 일년내내 크고작은 공연과 전시가 끊이지않는 몬트리올의 최고 예술공간이다. 여름이면 이 주변은 '몬트리올 국제 재즈 페스티발'을 비롯한 큰 행사들로 관광객을 모으는 데 큰 몫을 한다. 

 

<공연장에 걸려있는 재즈 페스티발의 마스코트 파란 고양이>


먼저 가까운 지하철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처음 눈에 띈 것은 노숙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계단 밑에 누워있고 친구라는 이가 경찰에게 어눌한 발음으로 횡설수설 경황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더 들어가보니 백인남자 서너명이 대낮인데도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갈 곳 없는 노숙자에게 지하철역이 쉼터가 되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튼센터 내부전경>

 

몬트리올의 중심지는 역시 '쌩 꺄트린(St. Catherine)'거리, 그 중에서도 멀티플렉스 시네마와 각종 크고작은 상점이 있는 이튼센터(Eaton center)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 작은 노점(kiosk)이라도 가지려면 월세가 $5,000(우리 돈으로 약 425만원)에 입점조건도 까다롭다고 한다. 천정이 유리로 되어있어 지하로 돌아다니다 만난 햇빛이 반갑다.

 

 

<쇼핑센터와 쇼핑센터 사이에도 온통 상점들>


캐나다의 하버드라 불리는 맥길대학(McGill, 이곳 사람들은 '매길'로 발음)은 몬트리올 도시 한 복판에 있다. 지하철 두 정거 거리의 콩코디아 대학(Concordia)도 손꼽히는 명문 사립이다. 이 두 학교는 불어를 공용어로 하는 퀘벡주에선  드물게 영어로 교육을 하고있어 미국에서 유학 오는 이들도 많이 있다. 퀘벡 주립대학인 위깜(UQAM, L'universite du Quebec a montreal)도 시내 중심가에 있으며 몬트리올 시립대학(L'universite de Montreal)도 멀지않다. 지난해 개장한 초대형 국립도서관도 UQAM 역에서 바로 연결된다.

 

<교차로 표지판>


캐나다의 MBA를 소개하는 어느 책자 첫머리에 '몬트리올에서는 공부하지말라'는 글이 있다. 이유는 너무 좋은 학교가 많아서다. 인재를 너무 많이 양성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졸업후 취업이 힘들어진다는 것. 반대로 생각하면 졸업후 몬트리올에 뿌리를 내릴 게 아니라면 이곳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생각해볼만하다는 이야기다. 학비도 미국보다 비교적 저렴하다.

 

 

<콩코디아 대학버스>


원래 예정은 서쪽 끝까지 가보는 것이었으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니다보니 그만 지쳐 지하철을 타러 들어갔다. 몬트리올의 지하철, 메트로(Metro)는 특이하게도 고무 타이어를 장착한 낡은 전동차로 운행된다. 그래서일까? 해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지하철에 뛰어드는데 그중에 상당수는 실패한다고 한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지하철 자살은 보도되지않는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캐나다지만 자살보도에 관한 한 규정이 엄격하다. 다른 이들이 덩달아 자살충동을 일으키지않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특히 자살방법은 절대 밝히지않는다고 한다.

 

<서는 자리가 일정하지않으니 바닥에 표시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지하철 시설이 낡아서 생기는 문제 하나. 엘리베이터가 거의 없다. 중심가의 복잡한 역조차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다. 캐나다 내에서도 사회복지 의지가 강한 퀘벡주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유는 간단하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회사 'STM'에서 따로 택시나 다름 없는 Door to door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장애정도만 확인되면 요금은 지하철 요금에 준해서 받는다.

 

나는 리오넬 그루(Lionel-Groulx)역에서 오렌지 라인 지하철을 내려 바로 건너편의 그린 라인으로 갈아탔다. 환승역이 모두 이처럼 편리한 건 아니지만 몬트리올 섬 바깥으로 나가는 전철 외에는 오래 걸어야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구조는 없는 것 같다. 

 

<지하철 환승역 편의점>


미국에선 버스나 지하철내 음식물 반입이 엄격하게 금지되는 게 보통인데 이곳은 신경 쓰는 이가 별로 없다. 심지어 승강장 안에 버젓이 매점이 있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던가? 처음 몬트리올에 도착했을 때는 캐나다 제2의 도시(토론토 다음으로 크다.)의 다운타운이 생각보다 작다고 느꼈었는데 이번 기회에 언더그라운드의 규모와 내용을 살펴보니 4년을 살아온 이 도시가 새롭게 다가왔다. 게다가 늘 학교와 집, 수퍼마켓 정도만 왔다갔다 하던 내가 몬트리올을 여행객처럼 다녀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출처 : 취미/생활
글쓴이 : 몽레알레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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