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
( 林悌 1549∼1587(명종 4∼선조 20) ) 조선 중기 문신·시인.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풍강(楓江)·소치(嘯痴)·겸재(謙齋). 본관은 나주(羅州). 속리산에 있던 성운(成運)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576년(선조 9)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알성문과에 급제, 병마사·예조정랑 등을 거쳐 지제교(知製敎)를 지냈다. 설명 조선 중기 문신·시인.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풍강(楓江)·소치(嘯痴)·겸재(謙齋). 본관은 나주(羅州). 속리산에 있던 성운(成運)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576년(선조 9)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알성문과에 급제, 병마사·예조정랑 등을 거쳐 지제교(知製敎)를 지냈다. 그러나 동서 양당으로 나뉘어 서로 비방하며 다투는 당시의 정계를 보고 비분강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명산을 찾아 다니면서 여생을 마쳤다. 그는 벼슬에 있으면서 숱한 일화를 남겼는데, 서도병마사로 임명되어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黃眞伊)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시조 1수를 지어, 부임하기도 전에 파직당하기도 하였으며, 기생 한우(寒雨)와 주고받은 시조의 일화 등이 유명하다. 문장과 시에 뛰어나 당대의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호방하고 쾌활한 시풍을 지녔다. 젊어서부터 방랑과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호협한 성격으로 유명하였다. 저서로 《수성지(愁城誌)》 《화사(花史)》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등 3편의 한문소설을 남겼으며, 시조 3수와 《임백호집》이 있다. 황진이의 무덤가에서 지은 시조는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잡아 권할 이 없어 그를 설어 하노라 이 시가 맞을 것입니다. 양반의 신분으로 기생의 무덤에서 절하고 시조를 짓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때였는데 그런부분에 구애받지않고 방외인(아웃사이더)으로서의 삶을 살아갔던 인물입니다. 만날 수 있었다면 술 한 잔 하면서 시를 주고 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으나 그 때는 황진이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던거죠 조그만 답이 되었나 모르겠네요. |
내용출처 : 설명은 야후에서 아래의 시는 제가 아는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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