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형(가명·49)
A정직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라면 가진 재산을 채권자들이 공동으로 권리행사를 할 수 있도록 내 놓아 그것으로 과거의 채무를 청산한 것으로 하고 나머지 금융채무를 면할 수 있다는 법리가 우리나라의 실무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채무자들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한 것인데 불과 몇 년 되지도 않아 이 같은 ‘파산제도’에 대한 역풍과 도전이 만만치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벌이가 있으면 파산을 하지 말고 개인회생을 통해 최소한이라도 갚아야 한다는 것이 금융채권자들의 주장이고 일부 지방의 파산 재판부가 받아들이는 이유입니다.
그리하여 중상위의 연봉을 받는 관리직 사원이나 의사와 같이 인적 자본, 즉 장래 소득을 올릴 능력이 큰 사람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정을 들어 보지도 않고 무조건 파산 선고를 거부하는 경향도 엿보입니다. 법의 취지에 부합하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현재의 법원이 추구하고 있는 방향이라면 보통의 사람들이 거스르기는 힘든 것이라 할 것이고 바꿀 방법도 마땅치 않은 이상 파산을 취하하고 현재의 실무에 순응하든가, 실무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입니다.
2006년 4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속칭 통합도산법 시행 이후 과거 주식회사에만 적용되었던 회사정리 제도가 개인을 포함한 모든 채무자에게 확대돼 이것을 회생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회생 제도하에서는 채무재조정을 포함한 상환계획을 작성해 채권자들의 의결을 거쳐 이것을 법원이 인가하게 되면 기존의 채무는 회생계획이 정하는 범위로 변경됩니다. 원칙적으로 채무자가 작성하지만 채권자도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조별로 담보권자의 3/4, 일반채권자의 2/3의 찬성으로 가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회생계획에 관해서는 가결되지 못한 조가 있더라도 그 조의 권리자에 대해 담보제공 등의 방법으로 권리보호 방법을 마련하는 것을 전제로 법원이 회생계획을 인가하기도 합니다.
채무자의 회생신청을 법원이 기각하거나 일단 개시한 후에도 부결 기타 사유로 회생절차를 폐지하면 법원은 직권으로 파산선고를 할 수 있고, 회생계획을 인가한 이후에 채무자가 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채무자에게 파산선고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회생신청은 내심으로는 파산신청을 바라지만 실무상의 어려움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의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