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복(가명·57)
A상업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금융기관이 불황기에 한계기업의 신용 상태에 의문을 가지게 될 때 자금을 회수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미리 이자의 형태로 원금을 회수하거나 원금 손실에 대한 보험을 들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원금 전액 상환을 하지 않으면 이자율을 대폭 올린다는 식으로 과도한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사례도 종종 눈에 띕니다.
문제는 은행의 자금 회수 조치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 기업의 자금 사정을 더욱 나쁘게 해 다른 채권자도 경쟁적으로 채권을 회수하게 되고, 새로운 자금조달처는 위기를 틈타 기업을 통째로 짜먹는 약탈적인 대금업자밖에 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고리 사채를 쓰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기업이 파탄에 이르는 길이 됩니다. 월 2∼3%의 사채 이자를 내면서 수익을 낼 정도의 폭리를 취하는 기업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기업인이 겪는 이러한 애로를 정치인과 금융감독 당국이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제금융시장에 통합된 지금 정부가 금융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이고 스캔들과 경제위기를 경험한 국민이 더 이상 관치금융으로 회귀하는 것에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신문고 울리듯이 기업인이 금융기관에 대한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것이지요.
그렇다고 기업이 당하고만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해결책은 불황기에 기업의 주인이 누가 되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소유권이라는 형식으로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지배해 생산활동을 조직화하는 권능은, 기업의 위험을 부담하는 것을 근거로 인정됩니다. 보통은 기업의 주인 또는 주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채가 증대함에 따라 기업의 자산을 차지하는 주주, 즉 기업 주인의 몫은 줄어들고 상황이 더 악화되면 일반채권, 심하면 담보채권도 손상을 입게 돼 있습니다. 위험을 부담하는 사람을 기업의 주인이라고 한다면 채권자가 주인이고, 기업주는 채권자를 위해 기업을 지켜 주는 종업원의 처지가 됩니다. 흔히 기업이 어려워질 때 은행에서 경비원이나 관리직원을 파견하는 것은 위험이 은행쪽으로 이전해 은행이 기업의 실질적 소유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의 운명을 실질적 이해관계인인 채권단의 처분에 맡기는 제도는 정당성이 있는 것이며, 기업인이 기업을 존속시키려고 혼자서 애를 쓰면서 희망 없는 투쟁을 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권단이 영업을 직접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기업인은 실질적 주인의 이익을 지켜 주면서 재기를 도모할 수 있고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기업소유권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용규모 500억원 이상인 기업은 2007년 8월 제정돼 2010년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부의 직접 개입 없이 채권금융기관의 자주적인 노력에 의해 채권행사의 유예, 주채권은행과 채권단의 기업 관리, 채권재조정, 우선순위 보장에 의한 새로운 운영자금의 신규 대여와 같은 조치로 기업가치를 유지, 개선해 채권단의 이익을 지키고 기업을 존속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물론 여신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기업이나 글로벌화해서 국내 금융기관의 노력만으로는 채권단의 통일행동을 이룰 수 없는 거대기업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따를 수 없고 법원의 감독 아래 원칙적으로 기업주 자신이 채권자를 위해 기업재산을 관리하는 방식의 일반적인 회생절차에 따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