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고픈 아비
심 보 선
죽을 먹고 자란 식물이
빈 밥그릇들을 꽃피우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를 망친 것은 식탐뿐이다, 배고픔 때문에
나는 밤마다 손바닥으로
여자의 가슴을 밥그릇 모양 석고 떴다
세상이여, 배고프다
나는 깨지기 직전의 손바닥을 너에게 내민다
세상이여, 이 짓도 이제 마지막이다
태양이 꽃잎들 위에
빛을 죽처럼 쏟아 붓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를 망친 것은 식탐뿐이다
오오, 내 가엾은 딸아
어서 이리 오렴
너의 빈약한 절벽을 한입에 가려주고 싶구나
내가, 내가 너의 끔찍한 아비란다
―신작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에서
▲1970년 서울 출생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풍경’ 당선
▲‘21세기 전망’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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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08.05.09 (금) 18:12, 최종수정 2008.05.09 (금)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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