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뜨락

배고픈 아비

바보처럼1 2008. 5. 31. 17:27
  • 배고픈 아비

    심 보 선

    죽을 먹고 자란 식물이
    빈 밥그릇들을 꽃피우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를 망친 것은 식탐뿐이다, 배고픔 때문에
    나는 밤마다 손바닥으로
    여자의 가슴을 밥그릇 모양 석고 떴다

    세상이여, 배고프다
    나는 깨지기 직전의 손바닥을 너에게 내민다
    세상이여, 이 짓도 이제 마지막이다

    태양이 꽃잎들 위에
    빛을 죽처럼 쏟아 붓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를 망친 것은 식탐뿐이다

    오오, 내 가엾은 딸아
    어서 이리 오렴
    너의 빈약한 절벽을 한입에 가려주고 싶구나

    내가, 내가 너의 끔찍한 아비란다

    ―신작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에서
    ▲1970년 서울 출생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풍경’ 당선
    ▲‘21세기 전망’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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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08.05.09 (금) 18:12, 최종수정 2008.05.09 (금)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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