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⑭멜론 재배해 연매출 25억원 이병익 대표

바보처럼1 2008. 7. 7. 23:12
[문화일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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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1촌 운동-스타 농민>
20년 외길 숱한 시행착오 “멜론 강국인 日에도 수출”
⑭멜론 재배해 연매출 25억원 이병익 대표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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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충남 청양군 남양면 봉암리 칠갑산 얼스멜론 연구회.

온실 안에 들어선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목덜미로 땀이 줄줄 흐른다. 한여름 온실 안 기온은 섭씨 45도를 훌쩍 넘긴다. 후끈한 열기 속에 연록색의 멜론들이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이병익(54) 대표가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것 보세요. 멜론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죠? 이 상처가 아물고, 다시 상처가 나기를 반복하면서 네트(그물모양의 멜론 껍질 무늬)가 형성되는 겁니다.”

어린 멜론은 조롱박처럼 미끈하지만 씨알이 굵어지기 시작하면서 표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 균열이 코르크 재질로 바뀌면서 촘촘한 그물무늬를 만들어내고 그물무늬가 아름답게 짜인 멜론일수록 품질이 좋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

“20년동안 멜론에 빠져 산 게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가면서 최고의 과일로 자라는 과정이 예술과도 같습니다.”

이 대표는 20년째 멜론 농사 ‘외길 인생’을 걸어온 국내 최고의 멜론 전문가다. 원예연구소에 다니던 친구의 소개로 멜론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1987년. 누구 한사람 제대로 경작법을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지만 오직 독학과 시행착오만으로 국내 최고의 멜론 생산자로 우뚝 섰다.

“힘들었던 순간이야 많지요. 88년에는 바나나 수입이 급증하면서 멜론이 시장에서 완전히 외면당했어요. 멜론을 키우는 사람들은 크게 늘어났는데 찾는 소비자가 없으니 가격이 폭락할 수밖에요. 한동안 멜론 농사를 포기하기도 했었죠.”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오기’였다. 멜론 선진국인 일본 시즈오카(靜岡)의 고급 멜론이 경매에서 개당 750만원에 팔리는 것을 보고 최고의 멜론을 만들고 싶은 의지가 솟구쳤다.

99년 이 대표는 뜻을 같이하는 농민들과 칠갑산 얼스멜론연구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연구에 나섰다. 8년만에 이 대표가 생산한 멜론은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여기서 생산되는 멜론의 가격은 일반 멜론의 2배가 넘는다. 연 매출액은 25억원대. 올 하반기부터는 멜론 강국 일본으로 수출도 계획하고 있다.

“후작(後作) 개념으로 대충 지어도 멜론을 생산할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품질은 형편없는 거죠. 1년에 단 1회 밖에 생산을 못합니다. 3월부터 땅을 일구고 온실을 짓고, 11월말까지 수확을 하는데 보통 새벽 4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해야 해요. 웬만한 사람들은 그냥 나가 떨어지는 거죠.”

얼스멜론연구회가 생산한 멜론들은 전국의 특급호텔로 납품된다. 그렇지만 이 대표는 “우린 성공한 조직이 아니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VIP들이 묵는 스위트룸에는 일본에서 생산한 최고급 멜론이 들어갑니다. 제 목표는 우리가 생산한 멜론을 납품하는 겁니다.” 그는 “언젠가는 일본을 꺾고 최고의 멜론을 생산하고 말 것”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청양 =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