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는 남다른 경쟁력으로 부농(富農)의 길을 개척한 농민들의 ‘성공기(記)’를 소개하는 ‘스타농민’란을 부활시켜 매주 1회씩 2면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농산물 시장 개방에 맞선 한국 농업·농촌의 당당한 주역이 될 ‘스타농민’ 후보와 관련해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추천을 기대합니다. 경제산업부 (02-3701-5190)
충남 예산군에서 ‘은행털이’는 짭짤한 소득원이다. 오죽하면 주민들 사이에서 “은행 털러 가자”는 말이 일상어일까. 여기서 은행은 은행(銀行)이 아니라 은행(銀杏)이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에 달리는 연둣빛 속살의 탐스러운 열매다. 은행으로 성공한 농업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예산으로 달려갔다.
25일 충남 예산군 봉산면 하평리 ‘두성은행’. 60㎡ 남짓한 작업장은 여느 농촌 창고와 다를 바 없다. ‘이런 곳에서 연매출 15억원이 넘다니…,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닐까.’ 내심 걱정을 하는 사이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씩씩한 한두진(41) 대표가 나왔다. “옛날부터 수매장으로 사용하던 장소입니다. 수확철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려 마당이 넓은 이곳을 쓰고 있지요. 가공장과 창고, 출하장은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8남2녀중 아홉째인 그는 군 제대후에 집안 과수원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소득은 신통치 않았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은행이다. 예산군에는 은행나무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주민들은 가을마다 은행을 털었다. 도매상이 찾아오면 넘기고, 안오면 쌓아두었다. 당시까지 은행은 어엿한 농산물 대접을 받지 못했다.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농업 경영체도 없었다.
그가 은행의 상품화에 발벗고 나선 것은 1997년이다. 은행을 산다는 소문을 냈더니 농민들이 찾아왔다. 한 대표는 은행을 굵기별로 다섯 등급으로 분류하는 선별기를 직접 만들었다. 굵기 1.2㎝이하 5등급 은행은 올해 기준으로 ㎏당 500원, 1.8㎝ 이상 1등급은 3000원에 수매하고 있다. 요즘 은행 시세는 ㎏당 도매가 6500원, 소매가 2만원 정도. 고급 브랜드 쌀값의 7~8배에 달하는 고수익 작물이다.
그러나 시련도 있었다. 지난 2003년 한 대표는 9억원의 빚까지 얻어 18억원어치의 은행을 사들였다. 하지만 그해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 오리고기, 삼계탕집이 문 닫자 판로도 막혔다. 말라 비틀어지는 은행처럼 그의 속도 타들어갔다. 그는 “9억원의 손실이 났는데 이제 겨우 복구됐다”고 말한다.
한 대표는 ‘은행박사’로 통한다. 4~5등급 은행만 열리던 은행나무도 그가 손을 대면 어김없이 1~2등급 은행 나무로 변한다. 노하우를 묻자 박피(剝皮)에 있단다. 나무 밑동 껍질을 벗겨주면 영양분과 수분이 밑으로 내려오지 못해 알이 굵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상품으로 판매되는 은행 1100여t 중에서 27%가 두성은행 제품이다. 그에게는 꿈이 있다. 당뇨와 요실금, 혈액순환, 중풍 등에 효능이 뛰어난 예산 은행을 고려인삼 같은 국제명품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이를위해 요즘은 술안주에서부터 미용팩, 환제품, 음료 등 소비자들이 쉽게 찾을수 있는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한 대표는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에 농촌이 어렵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산다”며 “은행을 전세계인의 사랑받는 건강식품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041-337-5957
예산 = 이제교기자 jklee@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