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야

사랑과 미움

바보처럼1 2010. 3. 28. 04:23

 

 


 
 
 


사랑과 미움

 

어떠한 인간관계이든
우리는 사랑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다.

괴로움, 슬픔, 아픔이 따른다고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삶이란 것 자체가 괴로움의 연속이니
살지 말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그래서 살며, 사랑하다 보면...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배신의 아픔으로 미움을 갖게 된다.

배신과 미움의 아픔은 내가 그에게
반대급부를 바라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조건 없이 사랑했다면
미움도 아픔도 가질 필요가 없고
돌아서 가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사랑은 기쁨이지만 괴로움이 동반 되듯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할수록
더욱 더 나 자신을 아프게 한다.

미워하는 마음은 희망 없는 아픔이요
미래가 없는 괴로움이다.

 

사람이니까 변하고 배신할 수 있으려니 하고
그냥 내 마음에서 그를 놓아 주는 것이디.

괴로운 미움을 마음에서 지우고
그 사람의 기억도 지워버리는 것이다.

내 인생의 장부에서 지우고
놓아 주는 것이다.

 

인생을 기록하면서
그 기록을 무조건 쌓아 짐을 만들기보다는
적절히 기억도, 기록도 지우고 삭제할 줄 아는
지혜로움을 가졌으면 좋겠다.

<발췌/가필>




*****

사랑과 걸레

 

 

진정한 사랑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외형을 중시하면
내면적 가치를 소홀히 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외형적 안목에 의존해 바라볼수록
오해의 소지도 그 만큼 많아진다.

 

걸레는 비천하기 그지없지만
내면적 안목에서 바라보면
숭고하기 그지없다.

걸레는 다른 사물에 묻어 있는
더러움을 닦아내기 위해
자신의 살을 헐어야 한다.

 

사랑과 이해란
스스로 걸레가 되기를 택하는 것이다.

<발췌가필>







 

 




☆1954년의 대구...☆


1주일 전에 와이프가 영어를 배우러 다니는 미국교회의 Adam이란 할아버지 선생님의 저녁초대가 있었습니다. 한국인들만 초대하는 저녁식사 였습니다. 전에 한국에 가본적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방문을 했었습니다. 처음엔 Adam의 나이 79세, 우리나라로 따지면 80 이었다는것에 잠시 놀랬습니다. 80세의 나이에도 volunteer 로 교회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복구가 한참이었던 1954년부터 1955년까지 대구에서 2년간 교회의 봉사활동을 자원해서 한국에 왔었다고 하면서, 그당시 찍었던 귀한 한국의 사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 자료 입수 정찬권(미국 유학생) / 보도: 매일신문


대구를 들어가면서 찍은 대구의 표지판 입니다...그당시에도 사과가 유명했군요....백두산 가는길을 사랑하자라는 말이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요...



제가 대구는 15년전에 한번 가본적밖에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여기가 어딘지는 대구 사람도 잘 모를듯 합니다..^^; 소시장의 풍경입니다.... Adam에게 인상깊었던 한국의 모습은 모두가 검은 머리에 하얀 옷을 입었다는 거였다고 합니다...



Adam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중 하나인 한국 노인분들의 담배피는 사진 입니다. 이 사진은 Adam의 집 한견에 Letter지 크기로 벽에 걸려 있던 사진 입니다.



구호물품인 옷가지를 받아가시는 아주머니와 등에 업힌 귀엽게 생긴 아이의 모습입니다.



시장의 한켠....카메라를 의식한듯한 어색한 모습의 두 여인...



추수를 하는 들판의 모습입니다.... 전쟁때문이었는지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어보이는 군요....



추수를 도와주고 있는 Adam의 젊은 시절 모습입니다. Adam은 지게에 대하여 무거운 짐을 지어도 힘들지 않게 설계된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래 보이는 세 사진은 피난민촌의 사진 입니다. 바투 붙어있는 판자집들의 모습과 무쇠솥에 데우고 있는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 피난민촌에 자주 일어났다던 화제의 모습입니다..




줄을서서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Adam의 기억하나는 그당시 한국인들은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잘 모르고 진하게 분유를 주었다가 모두가 배탈이 나, 한동안 우유 배급은 거부했었다는 일화를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공공 화덕에서 분유를 더운물에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피난민촌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입니다. 사실 지금은 최소한 50대 중반 이상이 되었을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 들입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무거워 보이는 한푸대의 Charcoal(숯?)을 이고 가는 모습입니다.




현재의 Adam과 아내 Alice의 모습입니다...

한국에 갔을당시 의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자원 봉사를 나간 곳이라 합니다. 이후 몇나라를 더 돌아다니다가 UTMB(University of Texas Medical Branch)에서 의사 및 교수를 하다가 지금은 은퇴를 하고 교회에서 외국인들은 위한 영어수업등의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재에는 그동안 다녔던 30여개국이 넘는 나라들의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된 기억들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서 몇장의 지금의 한국 사진과 영상을 보여 주었더니 한번 가보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서 이젠 여행하기 힘들거라며 웃어주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빛바랜 칼라사진들이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요...

100여장이 넘는 한국전쟁 후의 대구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만, 블로그 한페이지에 올릴수 있느 양이 한정되어 일단 몇장만 올려 봅니다... 올라와 있는 모든 사진은 Adam이 사용을 흔쾌히 허락 해 주었습니다.

두번째 1954년 대구의 사진들 입니다. 싸구려 필름 스케너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130장 정도의 슬라이드 필름을 스켄하는데 5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학생인 저로서 5시간의 투자는 큰 것이죠, 물론 50년동안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던 Adam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요....



왼쪽이 Adam이고 오른쪽은 친구인 burkholder라고 써 있네요...맞는 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Jeep을 타고가다가 전복사고를 당한후 대구의 한 군병원에서 치료후 기념으로 찍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사진과 비교했을때 눈빛이 강렬하군요...



원조물품에 대한 환영행사에 학생들이 동원(?)된것 같은 사진입니다...전쟁후의 모습들인데도 밝은 표정들입니다...



이 사진은 전쟁고아들을 위한 행사라고 하는데... 고아가 아닌사람들도 많이 보이는 군요....^^;



Outdoor Meeting이라고 써있는 사진입니다... Adam 말대로 모두가 검은 머리에 흰옷을 입었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을 방문한 Adam과 아이들의 사진 입니다...오른쪽의 양복아저씨 주윤발이랑 좀 비슷해보인다는 저만의 생각....ㅡㅡ;



Adam의 목에 걸린 사진기가 이 대부분의 사진들을 찍은 사진기 입니다. 기종이 뭔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Adam은 저 한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인상깊었다고 합니다...



좀 사는집 자제분들 같군요....비로도(?) 치마와 양장(?)을 한 자매들입니다..



피난민촌의 우유를 마시는 또다른 사진이군요....개인적으로 사진속 분들의 지금 근황들이 궁금해 집니다...




사진의 제목이 'boy wearing only rubber shoes'입니다...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제 어렸을때도 저러고 다니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던 기억이...



그당시 보기 드물었을거 같은 직업여성이군요.....교통정리 아가씨......멋지네요...^^;



Adam의 사진중 유일한 흑백사진인 김치독들의 사진입니다...공동으로 사용한 장독대 같은데....저당시에는 남의것 슬적 하는 일은 없었는지 궁금해 지는군요...



돼지팔러 장터로가는 한 아저씨의 사진입니다...



사진속의 아가씨는 Lois Khans이라고 하네요....서양 자동차와 서양 아가씨의 모습에 동네아저씨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좀 민망한듯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네요....



대구에 있는 한 유치원 이라고 합니다....일본식 건물이 눈에 띄는군요....그래도 저기 계신분들은 그당시 여유가 있으신 분들의 자제들이겠군요..



마을에 있는 공동 화로에서 분유를 타고 있는 사진 입니다...저 뒤에 짝다리 처녀는 어른앞에서.....ㅡㅡ;



놀이터 사진 입니다......



소시장에서 소의 상태를 보시는 아저씨의 미소가 ...... 좋아보입니다...




소시장에서 만난 큰 모자를 쓴 아저씨가 Adam의 눈에는 신기해 보였다고 합니다...





또다른 소시장 사진의 담배대를 파는 상인입니다...





유치원 사진이라고 써 있네요....





분유를 데우고 있는 모습...





피난민촌에서 분유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들...





피난민촌의 전체풍경...



분유 배급중입니다....



이 사진에는 부산이라고 써 있네요....어딘지는...



정확히 상표는 모르겠지만 빈 맥주켄을 사용하여 만든 지붕입니다...



전쟁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 사진입니다.



군용트럭을 이용해 구호 물품을 많이 날랐다고 합니다.
60트럭과 디자인은 같은데... 저도 군대시절 운전병이라 60몰았던 기억이...(제3야수교출신 ㅡㅡ;)



대공용 기관총옆에서... 자세잡고 있는 군인 아저씨...^^



장터로 가는 길일까요?



5일장의 한 풍경입니다.



Adam에게는 우리나라의 지게가 많이 인상깊었나 봅니다....



갓에 도포를 두른 할아버니와 포대기에 아이를 업은 어머니...



구호물품중 옷을 받기위해 모여있는 모습입니다.



평온해 보이는 농가의 풍경....



배추밭에서...



모내기를 하는건지 모종을 관리하고 있는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반바지를 입은 뒷모습을 봐선 우리나라 사람 같지는 않군요...



매일신문사에서 온 감사편지를 프린트해서 보여드렸습니다.



이 공돌이가 리포터흉내를 내며 인터뷰 하는 사진 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서재에서 보여드리고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아불싸...모뎀을 쓰시고 계셨습니다... 한페이지 보는데 10분 이상....



서재의 한 벽면엔 이렇게 방문한 나라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30여 개국을 방문하셨다고 합니다. 주로 1953부터 Galveston에 온 1967년 까지 전 세계를 다녀보신듯 합니다.



한국사진중 Adam선생님이 가장 좋아 하는 사진입니다. 어르신들이 쓴 갓이 말꼬리로 만들어진것도 아시고 계셨습니다.



이날 인터뷰를 같이한 동네 한인들과 함께한 사진입니다.


다시한번 Adam과 Alice에게 감사 드립니다. 오늘의 인터뷰는 이곳 시간 2월 8일 저녁8시에 이루어 졌습니다. 좀더 빠른 인터뷰를 시도 하려 했으나, 두분 모두 오늘도 8시까지 봉사활동이 있으시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참 욕심없으시고, 검소한 삶을 사시는 분들입니다.



50년대 대구 모습 슬라이드 제공 아담씨 인터뷰
몇일전에 반기문 총장의 아프리카 방문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볼수 있었읍니다. 사진의 내용에 대해선 지금 잘 모르겠지만, 50년대의 이 사진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사진들 이었던것 같습니다. 미묘한 감정들을 표현하기 힘들지만, 자만하지말고 성실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공돌이다 보니까 화두를 던져놓고 마무리가 힘드네요...^^; 하여간 Adam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매일신문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763&yy=2007

 
 
 
 


사랑하는 사람의
그 진실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그 정성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답니다
가끔씩 당신은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지만
따스한 그대의 눈빛은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노여움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답니다
돌아서는 사람의
그 마음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가끔씩 당신은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지만
따스한 그대의 눈빛은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 소피아



     
     










     
     
     


    정조대 이야기

     

    옛날 유럽 한 군주국의 왕은 왕비를 몹시 사랑하였지만,

    그녀가 자신과의 잠자리 때마다 힘없고 소극적인 거시기에 항상 불만인 것이 왕으로서는 큰 고민거리였다.

     

    더구나 자신이 없을 때는 조정 대신들이 항상 왕비의 침실을 드나든다는 소문까지 들리는 판이라

    왕으로서 또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체신이 영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전쟁터에 나가면서 소문의 진위도 확인할 겸 자신의 것을 확실히 지키기 위해

     왕비 보시기에 남자 거시기만 넣으면 자동적으로 댕강 잘려지는 비밀 정조대를 왕비 몰래 달아놓았다.

     

    마침내 전쟁에서 돌아온 왕은 조정대신들을 모아놓고

    전부 바지를 내리게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조정 대신들 중 오직 한 사람

    가장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영의정만 제외하고는 전부 거시기가 잘려나가고 없는 것이 아닌가....

     

    왕은 소문이 사실인 것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났지만

    그래도 단 한사람, 국가의 대들보인 영의정만은 믿을 수 있다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삼고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위엄있게 말했다.

     

    "영의정! 경만은 믿을 수 있는 것 같소. 그대가 소원을 청한다면 과인이 다 들어 줄테니 경의 소원을 말씀해 보시오."

    하나 영의정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허....영의정! 괜찮으니 어서 말씀해 보시오."

    그래도 영의정이 말을 않자 옆에 있던 좌의정이 왕에게 아뢰었다.

    .

    .

    .

    .

    .

    .

    .

    .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존경하올 영의정께서는 혀가 잘렸나이다.

    부디 통촉하시옵소서!!!"

     
     

     

     

     

     

      “곡예는 삶, 가족은 힘” '태양의 서커스’의 작품 ‘알레그리아’에서 모이시프 3부자가 포함된

      공연팀이 ‘러시안 바 액트’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마스트엔터테인먼트 2008-11-27 08:04:03

     
    *   *   *
     
    以德爲本, 才藝爲末(이덕위본, 재예위말)
    덕을 근본(根本)을 삼고, 재주나 기예는 지엽(枝葉)으로 본다.
    -청나라 강희제의 신하 선발 기준- 
     
     
    Scrapped & Edited OR Writtten by Hohoya,
    Private, 11.30, 2008
     

     
     

    날마다 행복하세요!
    날마다 건강하세요!
    날마다 성취하세요!

    Hohoya(好好爺)드림
    *^^*
       

    '호호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쉽게 알아보는 국제증시 상황  (0) 2010.03.28
    시간은 돈 보다 비싸다  (0) 2010.03.28
    우리의 뒷모습  (0) 2010.03.28
    떠난 시월을 아쉬워 하며  (0) 2010.03.28
    열풍 노바디  (0) 201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