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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조용필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모든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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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無, 二少, 三多, 四必, 五友의 人生
1무(一無) : 담배끊기
-무서운 암의 독소를 돈 주고 흡입하지 말자.
2소(二少) : 소식, 소주(少酒)
-식탐은 비만을 낳고 모든 성인병의 원인이 되고
-과음은 노추로 교양과 인격에 먹칠을 한다.
3다(三多) : 운동, 접촉, 휴식
-매일 즐기는 운동 한 가지는 꼭 계속하자.
-친구와의 만남도 좋은 접촉이지만
아내와의 사랑은 최고의 접촉이다.
-피로는 만병의 원인, 재충전 기회도 필수!
4필(四必) : 걷고, 배우고, 즐기고, 웃으며 살기
-매일 한시간 정도 걸으면 아파 눕는 일이 없다.
-목표를 세워 무엇이라도 배우면 늙을 시간이 없다.
-아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같이 즐기는 사람이 더 좋다.
-웃음은 만복의 근원이요 활력소다.
5우(五友) : 자연,친구,책,술,컴퓨터와 친구 되기
-자연은 좋은 벗이고 자연 속에 청춘이 있다.
-열린 마음으로 담소할 수 있는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
-언제 어디서나 짬이 되면 삶의 양식, 책을 읽자.
-절제된 술도 건강과 사교에 도움이 된다.
-만물박사 컴퓨터를 배워 컴맹도 면하고 인생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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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하게 보이지 않는 여인의 '눈물'
최근 언론에 자주 오르며 세간에 뜨거운 화제를 낳은 미술품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팝 아트의 선두주자였던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의 ‘행복한 눈물(Happy Tears)’이라는 작품이다. 이른바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삼성측이 비자금으로 사들인 고가의 미술품 중 하나로 지목받은 것이다. 대체 행복한 눈물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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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눈물'은 삼성미술관 리움의 홍라희 관장이 선호하는 미술품 취향을 잘 반영해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국내 미술계에서도 공공연하게 알려진 바대로 홍 관장의 미적 취향은 팝아트와 추상표현주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이 작품의 원작은 만화 속 이미지를 그대로 베낀 전형적인 팝아트로 작품 속 여성의 머리카락이 검정색인 데 반해 이번에 논란이 된 작품은 그것을 붉은색으로 변형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02년 11월 13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의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에서 715만 9천500달러에 낙찰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그 가격의 3~4배 정도 더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팝아트란 20세기 중반에 일어난 상업미술의 한 장르로 1950년대 초 영국에서 그 전조를 보였으나 1950년대 중 후반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함에 반대하고 매스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 문화적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장르였다. 팝아트 이전에 미국에서는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뤘는데 팝아트는 이런 추상미술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추상미술이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과 동일시될 수 있는 대상이 되고자 노력하고 주관적 미학을 추구한 반면, 팝아트는 일반대중의 감정과 동일시 될 수 있는 대상으로 제시됐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시대적 대안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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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눈물 |
팝이 태동한 1950년대 후반과 그 전성기를 이룬 1960년대는 서구 산업사회의 물질주의 문명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팝아트는 미국적 물질주의 풍조의 반영이며, 근본적 태도에 있어서는 당시의 물질문명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즉 팝아트는 산업사회적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식의 관점에서는 미술 내적 개념인 변혁의 추구라고 할 수 있는 큐비즘이나 추상미술 등과 같은 모더니즘 운동들과는 다른 차원을 지녔다. ‘팝(pop)’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경향이 있지만 ‘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경향이 유력하다. 즉 통속적인 이미지, 일상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題材)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용어이다. 팝아트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팝 아트는 기존 미술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기 때문에 광고물, 연예인 등 누구나 알 수 있는 소재들을 사용하며, 다소 과장된 구성과 강렬한 색채로 답답한 조직사회를 탈출하고 싶은 현대인들의 갈증을 시각적으로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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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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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눈물' 상반된 개념 한 작품 속 표현 고가 작품이 비자금 의혹의 축으로 전락 "사람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 있기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경우 만화의 형식, 주제, 기법 등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값싼 만화가 인쇄되는 제판 과정에서 생기는 망점을 세밀하게 재현해 사물을 확대하는데 이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넓은 붓자국을 만화양식으로 변형시켜 대규모의 연작으로 발표하는데 이는 추상표현주의의 과장된 표현방법을 비판하는 의식으로도 해석된다.
리히텐슈타인의 작업 양식은 아주 간결하다. 단순하고 평면적인 색채와 형태를 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선명한 검은색 테두리와 형태들을 메우고 있는 점들이다. 이처럼 리히텐슈타인이 만화에서 이미지를 따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자신의 어린 아들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들이 미키 마우스 책을 보여주며 아빠는 이만큼 그림을 못 그릴 것이라고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하는 바람에 이에 자극을 받은 리히텐슈타인이 이런 경향의 작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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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소녀 (상관없어! 난 브래드에 구조요청하느니 차라리 빠질래!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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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마치 신문에 실리는 사진처럼 작은 점들로 채워져 있는데, 리히텐슈타인은 일률적으로 구멍이 뚫어져 있는 판을 사용하여 색점들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다. 이를 일명 ‘벤데이 점(Ben Day Dot)’이라고 부른다. 이 망점은 그가 직접 드로잉하고 채색한 것이 아니라 구멍이 뚫린 판을 사용하여 색점들을 만들어내는 매우 기계적인 작업에 의존 한 것이다.
이번에 유명세를 치룬 ‘행복한 눈물’ 처럼 리히텐슈타인은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미지의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는데, 사실 이 행복한 눈물이라는 테마는 몇 가지 재미있는 분석거리를 제공해준다.
보통은 행복과 눈물은 상반된 개념으로 이해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작가는 이 상반된 개념을 한 작품 속에 표현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작가가 이 작품의 명제를 ‘행복한 눈물(Happy Tears)’로 표기를 했을 때 그림 속 여인이 행복감에 겨워 흘린 눈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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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걸 (울고잇는 소녀 / 편집자 주) |
하지만 현재 이 작품은 그 소장가가 누구였든지 간에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정당한 경로를 통해 소장되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 특히 부정한 방법으로 구입한 명화들은 소장가를 잘못 만나 영원히 세상과 등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장 자체가 외부에 알려질까 두려워 지하 수장고 깊은 곳에 숨겨두곤 해서 결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이다.
얼마 전 이 작품의 실제 소유주라고 주장하는 서미갤러리 대표가 이 작품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아직도 이 작품에 대한 진짜 소유주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혹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공개된 작품 속 이 여인이 흘리는 눈물이 행복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왜 일까?
한 때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고가의 작품으로 귀한 대접을 받던 이 작품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대기업 비자금 의혹의 축으로 전락한 것이 서러워서는 아닐까? 이유야 어찌됐든 부디 이 작품이 주인을 잘못 만나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출처: 대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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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메모
설은 새해의 첫날, 한자로는 원단(元旦) 혹은 원조(元朝)라고 한다. 설의 기원은 멀리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설은 태음력에 따라 지정된 것으로써 한말 개화파와 기독교인들이 서양문명을 수용하고 개혁하면서 음력설을 지양하고 양력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대한제국은 1895년에 건양이란 연호를 쓰기시작하고 1896년 1월1일을 양력설을 쇠도록 선포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모든 공문서에 양력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면적으로 백성의 호응을 얻지 못했으며 궁중에서도 일부 음력설을 쇠기도 했다. 그리하여 두 가지 절충작업이 시작되었다.
궁중에서 발간되는 연례계획 즉 국가 행사, 궁중의례, 간지와 절후 등의 일정이 기록된 달력에 음력과 양력을 병기표기 하도록 함으로써 결국 이중월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일제시기에 들어 조선총독부에서는 강력하게 언론을 통해 이중과세의 폐해를 설명하고 일본명절을 쇠도록 독려하고 양력설을 강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민족정신으로 생각하고 음력설을 고수하였다.
그 후 이승만정권이 1949년에 다시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하고 신정을 휴일로 정했으며 이중과세의 폐해를 홍보하면서 신정을 쇠도록 권장하였다. 그러나 음력과세의 기세는 꺾이지 아니했다. 산업화에 따라 이농이 시작되었고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대 이동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 고속도로가 생기고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설만 되면 대도시에서 고향 농촌으로 고향방문을 위한 민족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뿌리 깊은 민족정서를 존중하여 1985년에 고유명절인 구정을 ‘민속의 날’로 지정하고 그 후 1948년에 드디어 고유명절 ‘설’이란 이름을 복원시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양력을 세계적 추세에 따라 정부의 모든 행사와 공식적 기록을 양력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신정에는 하루만 휴일로 정하고 구정‘설’은 3일 동안 연휴를 두어 민족정서를 함양하고 부모에 대한 효도와 조상숭배정신과 가족친목의 기회로 활용하게 하였다.
설은 삼국시대부터 우래 되었다고 하며, ‘설다‘, ’낯설다’에서 나왔다고 한다.내일은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낯설고 두렵기만 하다.
지난일 지난역사를 경험으로 삼고 새로운 미지의 시간에 대한 기대와 계획을 조심스럽게 맞이함으로써, 급변하는 역사 속의 일원으로서 시간의 질서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깨우쳐 가는 또 다른 한해이며 새롭게 출발하는 한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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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어둠 뚫고 태양이 있는 힘껏 어둠을 몰아냅니다. 매일 찾아오는 아침, 고단한
어제는 털어버리고 새 날을 시작하는 시간이지요. 처음 같은 풋풋한 마음을 날마다 다시 찾으며,
묵직한 삶의 무게를 견뎌갑니다. 인천대교 건설현장에서 / 김미옥 기자 /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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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계획으로 시작되고 노력으로 성취되며 오만으로 망친다.
<발췌>
Happy Lunar New Year!
Scrapped & Edited in Places
& Written Partially by Hohoya, Private, 1.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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