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이 술잔에 나를 담으려 한다
술로써는 취하지도 씻기지도 않을
내 피의 길고 긴 어둠길
서리서리 담아
혼신의 술을 빚고자 한다
취한 자에게 길이 물려줄 것은 이 술뿐
마시는 자여 보라
여적(餘適) 같은 내 몸이 새로 빚은 술
이 피의 즐거움, 이 피의 서러움으로
씻지 못할 삶을 씻어 밝히고자 한다
-시집 ‘답청’(1997년 문학동네 재간행)에서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1968년 서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 당선
▲김수영문학상, 시와시학상, 만해문학상 수상.
▲시집 ‘답청’,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시를 찾아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