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손길 -김소연-
노련한 손길이 사과 한 알을 깎듯, 지구를 손에 들고 깎아서 만든 길, 그 길고 긴 길의 한쪽 끝에 한 개의 당신이, 또 한쪽 끝에 또 한 개의 당신이, 나는 아침마다, 나는 밤마다, 두 개의 당신을, 나 하나와, 나 하나와, 나 하나를 세워두며, 바통을 잇는 달리기 선수처럼, 그 모퉁이, 모퉁이마다 무수한 내가, 언젠간, 이 길의 끝장을 집어들고, 미역처럼 둘둘 걷어, 국을 끓여, 그리하여 그것이, 나의 마지막 안부, 어느 쪽으로 달려가도 언제나, 반대쪽으로 뒤통수가, 언제나, 그러나 언제나, 셋도 아니고 넷도 아닌, 딱 두 개인,
-신작시집 ‘눈물이라는 뼈’(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
▲1967년 경북 경주 출생, 가톨릭대 국문과 졸업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산문집 ‘마음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