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야

가장 잘 생긴 얼굴의 모습

바보처럼1 2010. 9. 13. 14:28

 

 

 

 

 

장미와 배롱나무

 

 

까치밥나무 열매 

 



정수유심 심수무성
靜水流深 深水無聲
고요한 물이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없다

침묵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
후에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농부의기다림과 같다.
긴 인내와 희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기 위해서는
60년이 걸린다고도 한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누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상처 받지 않고 또 자신을 알리지
못해 안달하지도 않는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인용/축약/가필>
 

 

 

 

베트남 작가의 추상화 감상
Nguyen Dinh Dang


 


 

 
 

 


 


 


 


 


 


 


 


 


 


 


 


 


 


 


1958: Born in Hanoi, Vietnam.
1982: MSc (Moscow State University, Moscow, Russia)
1985: Ph.D. in nuclear theory (Moscow State University, Moscow, Russia)
1990: Doctor of Physics and Mathematics Sciences (Moscow State University, Moscow, Russia).
2004: "Color and Line", Cafe & Gallery Kenya, Yurakucho, Tokyo, Japan, February 28 - March 13.
2002: Gallery Shiramizu Bijutsu, Ginza, Tokyo, Japan, January 31 - February 9.
2001: Sun Azalea Hall, Wako city, Saitama, Japan, October 5 - 11.
(자료출처:한국야외수채화가회http://www.outdoorwatercolor.com/)
 
 




스스로 무너지지 말라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유대인을 학살할 때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독일군에게 있는 인간의 양심이었다.
그 양심을 없애려고 독일 군부는 유대인들을 짐승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3만 명이 넘는 수용소에 화장실을 한 개만 만들었다.

할 수 없이 유대인들은 아무 데나 배설했고,
배설물과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을 보며
독일군의 양심은 점점 사라져갔다.
결국 인간다움이 없어진 유대인이 짐승으로 보이면서
살인은 쉬워졌다.

수용소 생존자들은 대개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매일 4시 반이 되면 수용소에서 한 사람마다
따뜻한 물 한 컵씩을 제공했다.

어떤 사람은 그 물을 받아 조금 먹고 나머지 물을 아껴 세수했다.
그리고 최후의 남은 물을 조금 사용해 옷 조각으로 이빨을 닦고
수용소에서 발견한 유리조각으로 깨끗하게 면도를 했다.

내일 죽어도 인간다움은 잃지 않겠다는 인간존재의 몸부림이었다.
독일군에게 가장 무서운 항거는 그런 인간다움의 몸부림이었다.
'짐승 죽이기'는 쉽지만 '인간 죽이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독일군은 유대인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이 되기를 원했지만
끝없이 인간다움을 위해 몸부림친 사람들은
죽더라도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죽기를 원했다.

인간다움의 선언이 있는 곳에 생명의 길이 있다.

매일 일정 시간이 되면 독일군은 처형자들을 골라냈다.
그 때 잘 면도된 얼굴이 보였다.
여전히 더럽지만 분명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들은 처형자로 선택되지 않았다.
무자비한 나치도 짐승은 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인간은 쉽게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포기하면 남이 나를 붙들어 주지 않는다.
단점이 많아도 자기의 가능성을 믿고 꿈을 잃지 말라.
단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 그 단점이 장점으로 변한다.

인간의 위대한 역사는 다 그렇게 이루어졌다.
자기를 존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보라.

어느 날, 손가락들이 최고 논쟁을 벌였다.
엄지(thumb)가 말했다.
"최고라고 할 때 내 손가락을 사용하니까 내가 최고야!"

검지(forefinger)가 말했다.
"최고를 가리킬 때 내 손가락을 사용하니까 내가 최고야!"

중지(middle finger)가 말했다.
"내가 키가 제일 크니까 내가 최고야!"

약지(ring finger)가 말했다.
"결혼반지 낄 때 내 손가락에 끼니가 내가 최고야!"

소지(little finger)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한 마디 했다.
"너희들, 나 없으면 병신 된다!"

내세울 것이 없는 나도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이다.
어디에 가든지 내가 없으면 안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참여하라.
위세를 부리고 착각에 빠지라는 말이 아니라
나의 헌신이 필요한 줄 알고 헌신하라는 말이다.

그처럼 자기를 극복하고 역사를 만들라.
스스로 무너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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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Minutes of Super Slow Motion(4D 슬로우 동영상)
Shot on the Photron SA1.1 high-speed camera, capable of recording 5,000 frames per second (fps) at high
resolution and 650,000 fps in low res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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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파 클래식(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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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 없는 장애 극복하고 육상선수에서 모델까지
 

한 여성 모델이 패션쇼에서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며 런웨이(runway)를 걷고 있다. 그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육상선수 출신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그는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나 어릴 때 두 다리를 절단했다.

영화 같은 성공이야기의 주인공은 현재 모델 겸 배우로 활동 중인 에이미 뮬린스(Aimee Mullins). 지난 1976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는 ‘비골 무형성(Fibular Hemimelia)’이라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이 장애는 종아리뼈인 비골이 없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뮬린스는 한살 때 무릎 아래 다리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뮬린스는 학창시절부터 스프링이 달린 특수 의족을 달고 육상선수로 활약했다. 지난 1996년 애틀란타 패럴림픽(Paralympic)에서는 미국대표로 출전해 100m를 17.01초에 주파하며 대회 신기록을 세웠다. 운동만 잘한 것이 아니었다. 조지타운대에서 재학 중 인턴십 프로그램을 거쳐 국방부에서 일하기도 한 재원이다.

1999년에는 유명 디자이너인 알렉산더 맥퀸이 자신의 패션쇼에 모델로 서달라고 한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제2의 인생이 열렸다. 그의 사연을 접한 미국·영국 등 세계 각지의 의족 제작 전문가들이 그를 위해 의족을 만들어 줬다. 뮬린스는 그 의족을 달고 당당하게 패션쇼 무대에 선다. 2003년에는 영화 ‘월드트레이드센터(World Trade Center)’에 출연하면서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한계를 뛰어넘는 뮬린스의 활동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국 피플지는 지난 2009년 그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50인에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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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한승기  /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밤 지나면 나의 가슴에 이별을 주고 떠나버린 사람아
이젠 부르지 않으리 애써 다짐해 놓고 밤이 새도록 그대 생각에 눈을 젖는다  
*미운사람아 정든 사람아 어디서 무얼 하는지 보고 싶어서 몸부림쳐도 만날 수 없는 사람아
내가 세상에 태어나 너를 만나 사랑한 것이 지금 나에겐 전부야 다시 돌아와 다시 나에게 돌아와 그언제라도

 
 
아래 만화는 개인의 현재 처지와 심상에 따라 눈물이 날 수 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 텍스트로 보낸 적이 있는데 만화가 있어 다시 편집하였습니다.
 
*     *     *
 
분위기 바꾸기
속 바라보면 변하는 그림
 

 

아들 돌이

옛날에 도리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도리는 말투가 늙은이 같아서

별명이 애늙은이 였습니다.


어느날, 도리는 아빠와 같이 목욕탕에 갔습니다.

아빠는 먼저 온탕에 들어갔습니다.

아빠는 "아 시원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도리는 그말을 믿고 탕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도리에게는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그때! 도리가 하는말

"세상에 믿을 쌔끼 하나도 없다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빠는 화가 났지만 참았습니다.


목욕을 다하고 나서 아빠는 아이스크림 3개

도리는 2개를 먹었습니다.

"도리야 아이스크림 2개 먹으니까 배부르지?"라고 하자

도리가 "그럼 3개 먹은 놈은 배 터져 죽겠네?"라고

하였습니다. 아빠는 집에와서 도리를 팼습니다.


엄마가 말리자 도리가,

"나둬라 지 쌔끼 지가 팬다는데..."

그래서 엄마도 같이 팼습니다.


몇 시간후, 엄마와 아빠는 도리에게

너무 미안해서 찐빵 5개를 사고 집에 왔습니다.

엄마가 말했습니다.

"도리야, 찐빵을 엄마가 1개 먹으면 몇개 남지?"

돌이는 "4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그럼 아빠가 2개 더 먹으면?"

하니까 도리가 "2개!" 라고 하였습니다.

또 엄마가 "엄마가 2개 더 먹으면?"하고 묻자 돌이가

"썅, 너희들 다 쳐먹어라!"라고 했습니다.

그후로 도리는 다시는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서울=뉴시스】서재훈 기자 서울 삼성동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정어리 매직서커스 다이빙쇼'
 

 

 
 사랑은 행복을 죽이고, 행복은 사랑을 죽인다.
-스페인 명언-
 
To afford cup of coffee at ease!
Scrapped in places, Edited or Written Partially
by 0000, Sincerely, Private, 9.11, 2010 
 
 
< Hohoya Plus >
짬이 되고 흥미가 있을 때...

머리 감을 때 주의할 사항(?)

우리는 오랜 동안 하루 이틀에 한 번씩 거의 정기적으로 머리를 감아왔다. 머리를 감을 때 대개는 습관적으로 시장에서 판매하는 샴푸를 사용해 왔다. 머리를 감는 이유는 머리에 기름때가 묻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처럼 나이가 들면 대개는 머리가 많이 빠지고 털이 가늘어져 있다. 또한 지금도 머리를 감은 후에는 아까운 머리털이 계속 빠지고 있다. 원인은 모근(毛根)이 노화로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샴푸는 약해진 모근을 더욱 약화시켜 머리를 더 빠지게 하고 그리고 더 가늘게 만든다. 이제 우리 나이에서는 머리를 감을 때 샴푸나 비누를 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미지근 한 물로 헹구기만 해도 된다.

그러면 물로 헹구기만 해서는 머리에 기름이 씻어질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머리에 기름이 오르는 이유는 머리털을 보호하기 위해 모근을 통해 머리털에 기름을 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샴푸를 사용함으로써 머리 보호 기름을 없애기 때문에 모근에서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기름을 계속 올리게 된다.

물로만 헹구면 그 이상 머리 기름이 올라오지 않아 머리털이 깨끗해질 뿐만 아니라 머리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믿기지 않으면 한번 실험을 해보는 것이 좋다.

나는 우리나라 피부과의 대가인 이성낙 총장의 권고로 머리를 감을 때 샴푸를 쓰지 않은지 거의 5년 가까이 되었다, 그리고 5년 전의 머리 숯을 아직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항상 머리 숯이 청결하다는 기분을 가지고 산다. 이제 피부에는 비누를, 머리에는 샴푸를 절대 멀리해야 한다. <전 연세의료원장 김일순 박사의 조언>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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