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의 정류장
경북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에서 미술관을 운영하시는 류준하님이 썰렁하기 짝이
없는 봉화군 관내에 있는 시골 버스 정류장들을 이토록 곱게 단장을 하셨다네요.
▲ 봉당 아래 암탉들이 정류장에 들어서면 금방 푸다닥~ 도망갈 것 같습니다.
▲ 맑은 가을하늘 같은 게시판에 구름 한점 띄우듯 작은 엽서라도 한장 붙이고 싶습니다.
▲ 마굿간의 소들을 위해 풀이라도 한줌 뜯어들고 들어서고 싶어요.
▲ 낚시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듯 느긋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 수박서리하듯 한통 들고 뛰고 싶어집니다.
▲ 디딜방아를 찧던 아낙은 지금쯤 무엇을 할까요?
▲ 예쁜 서재에 앉은 듯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 올해 고추장 담글 고추 걱정은 없겠습니다.
봉화의 청정고추가 하나가득이니까요.
▲ 베틀과 물레 다듬이돌, 소반, 목화솜이불, 방패연, 삼베수건, 뒷담 아래 복사꽃...
어릴 적 생각이 절로 납니다.
▲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 이야기도 생각나고요.
▲ 반들반들 손때가 묻은 가마솥을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지네요.
아궁이에 불길이 살아 있어 겨울에도 춥지않을 것 같아요.
▲ 이것은 봉화의 춘양목을 염두에 두고 그리신 듯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류장들이 있는 봉화로 여행가고 싶어지지 않으세요?
퇴계선생의 맏아들이 2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한창 젊은 나이의 맏며느리는 자식도 없는 과부가 되었다. 퇴계 선생은 홀로 된 며느리가 걱정이었다.
퇴계선생의 며느리
'남편도 자식도 없는 젊은 며느리가 어떻게 긴 세월을 홀로 보낼까?'
그리고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집이나 사돈집 모두에게 누(累)가 될 것이기에,한밤중이 되면 자다가도 일어나 집안을 순찰하곤 했다.
어느날 밤, 집안을 둘러보던 퇴계선생은 며느리의 방으로부터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순간 퇴계 선생은 얼어 붙는 것 같았다. 점잖은 선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며느리의 방을 엿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젊은 며느리가 술상을 차려 놓고 짚으로 만든 선비모양의 인형과 마주앉아 있는 것이었다. 인형은 바로 남편의 모습이었다.
인형 앞에 잔에 술을 가득 채운 며느리는 말했다.
"여보, 한 잔 잡수세요."
그리고는 인형을 향해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남편 인형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는 며느리... 한밤중에 잠못 이루고 흐느끼는 며느리...
퇴계 선생은 생각했다. '윤리는 무엇이고 도덕은 무엇이냐? 젊은 저 아이를 수절시켜야 하다니... 저 아이를 윤리 도덕의 관습으로 묶어 수절시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인간의 고통을 몰라주는 이 짓이야말로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다. 여기에 인간이 구속되어서는 안된다. 저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이튿날 퇴계 선생은 사돈을 불러 결론만 말했습니다.
"자네, 딸을 데려가게." "내 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잘못한 것 없네. 무조건 데려가게."
친구이면서 사돈관계였던 두 사람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딸을 데리고 가면 두 사람의 친구 사이 마저 절연 하는것이기 때문에 퇴계선생의 사돈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안되네. 양반 가문에서 이 무슨 일인가?"
"나는 할말이없네. 자네 딸이 내 며느리로서는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 지만 어쩔 수 없네. 데리고 가게."
이렇게 퇴계선생은 사돈과 절연하고 며느리를 보냈다.
몇 년후 퇴계선생은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날이 저물기 시작했으므로 한 집을 택하여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런데 저녁상을 받아보니 반찬 하나하나가 퇴계선생이 좋아하는 것 뿐이었다. 더욱이 간까지 선생의 입맛에 딱 맞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 집 주인도 나와 입맛이 비슷한가 보다.'
이튿날 아침상도 마찬가지였다. 반찬의 종류는 어제 저녁과 달랐지만 여전히 입맛에 딱 맞는 음식들만 올라온 것이다.
나의 식성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이토록 음식들이 입에 맞을까? 혹시 며느리가 이 집에 사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퇴계선생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막 떠나가려는데 집주인이 버선 두 켤레를 가지고 와서 '한양 가시는 길에 신으시라'며 주었다. 신어보니 퇴계선생의 발에 꼭 맞았다.
아! 며느리가 이 집에 와서 사는구나.' 퇴계선생은 확신을 하게 되었다. 집안을 보나 주인의 마음씨를 보나 내 며느리가 고생은 하지 않고 살겠구나.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짐작만 하며 대문을 나서는데 한 여인이 구석에 숨어 퇴계선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퇴계선생은 이렇게 며느리를 개가시켰다. 이 일을 놓고 유가의 한 편에서는 오늘날까지 퇴계선생을 비판하고 있다.
"선비의 법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윤리를 무시한 사람이다."
하지만 또다른 한 편에서는 정반대로 퇴계선생을 칭송하고 있다.
"퇴계선생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을 올바로 지킬 줄 아는 분이시다. 윤리를 깨뜨리면서까지 윤리를 지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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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즐겁고 멋진 실버 인생
◈ 세계최고의 맥주 ◈ 코로나 사장이 먼저 주문했다. 다음 버드와이저 사장이 주문했다. 다음으로 기네스 맥주 사장이 주문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참석한 맥주 사장이 말했다. 다른 사장들이 왜 당신네 맥주를 주문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러분들이 맥주도 아닌 걸 주문하니
세계 유명 맥주회사 사장들이 호프집에 모였다.
"난 세계 최고 맥주 코로나 맥주를 주시요."
"나는 진짜 세계 최고 맥주 버드와이저를 주시요."
"난 맥주의 왕중왕 기네스 맥주를 주시요."
"난 콜라로 주시요."
한국 맥주 사장이 대답했다.
나 혼자만 맥주를 마실 수 없지 않소?"
해변 위의 예술작품
그는 미스터리 서클(주체가 확인되지 않는 지상의 무늬)
최근에는 꽃, 글자 등 더 구체적 모양의 그림을 그린다
그는 미스터리 서클(주체가 확인되지 않는 지상의 무늬)
환경 운동가이자 자연주의 사진가인 라네트 뉴웰의 사진세계<애니-휴먼(ani-human)> 시리즈 / 중앙닷컴
가장 강한 우정은 서로 닮은 데서 생겨나고
가장 격렬한 사랑은 배신에서 생겨난다.
-호호야 선문(選文) / 쿠랑쥬 부인

Scrapped in places, Edited or Written Partially
by 00000, Sincerely, Private, 12.14, 2013
교육의 눈-꿈꾸게 하는'감사'
어떤 삶이 성공일까? 어렵고 힘겨운 환경에서도 기죽지 않고, 그 작은 환경에도 감사하면서 기뻐하는 삶! 꿈을 안고 기도하면 하늘이 크고 아름다운 일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거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성공이 아닐까? 아프리카에 희망의 불씨를 켠 윌리엄 캄쾀바의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아프리카 말라위 가난한 오지에서 태어났어요. 1년치 학비 80달러가 없어 학교에서 쫓겨났고, 하루 종일 옥수수 밭에서 일해서 힘들지만 감사할 게 많아요. 하느님은 나에게 꽃과 산(山)을 주셨고 그리고 바람도 주셨어요. 이건 축복이에요. 나는 일을 마치고 바람을 맞으며 도서관으로 뛰어가요. 14살 나는 도서관에서 운명의 책을 만났지요. 미국 초등학교 과학교과서 '에너지 이용', 책속에서 풍차를 보았고 바람을 이용해서 전기를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는 그때부터 풍차를 만들기 위해 중학교 옆 고철 쓰레기더미 속에서 풍차를 만들 재료를 구하기 위해 다니니 '미쳤다'고 했지요." 부모님조차 그런 아들을 보면서 걱정을 했다. 하지만 윌리엄은 꿋꿋이 공부하면서 자신의 풍차를 만들어 갔다. 친구인 길버트는 위급한 순간에 돈을 보태주어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게 도와준다. 마을 사람들은 윌리엄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비난해도 "I tired it and made it."(나는 시도했고, 결국 그것을 만들어 냈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윌리엄은 온 마을을 환히 비추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그가 바로 윌리엄 캄쾀바! 과학에 눈뜨기 전, 다른 농부들처럼 옥수수를 키우는 가난한 나라의 평범한 농부였다. 그의 가족은 하루 한 끼 밥을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 중학교 때 공부하며 매우 행복해 했던 자신을 떠올리고, 공부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그는 도서관에 갔고, 그가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 담긴 책을 발견했다. 그 책에는 풍차가 물을 퍼 올리고 전기를 만들어준다고 적혀 있었다. 얼마 후 그는 풍차로 전기를 만들어 전등 4개와 스위치를 만들었고, 또 다른 풍차를 만들어 관개(灌漑)도 했다. 사람들은 핸드폰을 충전하기 위해 그의 집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꿈을 이루고 나니, 그는 어느 덧 유명한 사람이 돼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환경이었지만 그 속에서 그는 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윌리엄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속한 환경이 아니라 내가 택한 감사가 날 꿈꾸게 했어요.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면 우리 몸과 마음은 놀라운 일을 해냅니다. 이제는 말라위를 위해 아프리카 땅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내 꿈을 자라게 하고 있어요" 포스코 직원들이 감사라는 언어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체험하는 실험을 했다. 양파 두 개를 준비하고 직원들이 하나의 양파에는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들려주고, 다른 하나의 양파에는 '미워, 나빠' 등 부정적인 말을 들려줬다고 한다. 놀랍게도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들은 양파는 싹이 빨리 자란데 비해, 부정적인 말만을 들은 양파는 싹이 거의 나오지 않거나 썩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실험 결과, 포스코 직원들은 하루에 다섯 가지 감사 메시지를 기록하는 '5감사 운동', 3번 감사, 2번 칭찬, 1번 미안하다고 말하는 '321운동' 등을 전개함으로써 사소한 감사가 모두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몸소 터득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의 학교에서는 학습 플래너에 감사 및 긍정·행복일기를 학생들에게 쓰게 하고 있으며, 학교현관에 긍정 프로젝트를 만들어 게시하고 있다. 또한 학교와 기숙사 건물을 감사·긍정·행복 Zone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지독하게 가난한 미혼모에게 태어나 어머니 품이 아닌 할머니 손에서 자란 소녀, 그곳에서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14세에 출산과 동시에 미혼모가 된 소녀, 아이는 태어난 지 2주 만에 죽었고, 그 충격에 가출해 마약복용으로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아간 여인, 그가 바로 오프라 윈프리다. 하지만 그는 날마다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찾아 기록하면서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감사는 일상적인 내용으로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미운 짓을한 동료에게 화를 내지 않았던 제 참을성에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등 감사의 습관, 감사의 생활화가 오늘의 오프라 윈프리를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감사의 생활화는 감사의 훈련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이 누리는 사람일지라도 감사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적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할 줄 알면 행복한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환경을 불평하며 초라하게 살지 말고, 감사의 생활화로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되자. <박영조 인천전자마이스터고교 교장 / 인천일보 2013년 11월 2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