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한시의 세계

바보처럼1 2006. 4. 23. 00:58
옛 시인의 풍류에 젖다
[서평]<한시의 세계>
  한미숙(maldduk2) 기자   
▲ 겉표지그림(문학동네)
ⓒ 한미숙
한시(漢詩)에서 '한'은 무엇이고 '시'는 무엇일까. 한시이면서 여전히 시(詩)라고 하는 것은 왜 그럴까. 시에 운율이 있다는 것은 동서양이 같다. 그러나 서양에서의 운율과 동양에서의 운율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운율은 또 무엇에 따른 운율인가.

이 책은 시작하면서 '춘당춘색고금동(春唐春色古今同)'이라 했으니 동·서양이 봄빛만 같은 게 아니라 시의 감흥도 같지 않을까 싶다. 세월이 흐른다 한들 봄빛이 그 어느 때인들 변할쏘냐. 작년 봄에 느끼는 봄의 색깔, 봄의 느낌이 올해도 다를쏜가! 이런 느낌을 굳이 한자어로 표기한다고 '한시'가 되는가?

당연히 문자에 운율을 곁들이지 않으면 '한시'가 될 수 없다. 소리의 높낮이와 변화에 따른 평(平)과 측(仄)의 소리, 즉 평성과 측성으로 나뉘는 한시에서는 '오언절구'의 형식이 가장 짧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 '왕지환(王之渙)'의 시 한 편을 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다.

"白日依山盡 한낮의 태양은 산에 기대 저물고/ 黃河入海流 황하는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欲窮千里目 천 리 시선을 다하고자/ 更上一層樓 다시 오르노라 누 한 층을."


지은이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는 주역에서의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자세를 드러낸다. 한낮(白日), 입해(入海), 욕궁천리목(欲窮千里目)등에서 백, 입, 욕 등은 힘이 넘치는 표현이다. 힘이 넘치면서 어떻게 한시는 자연과 친근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지은이는 '천운만수간'에서 어느 정도 시사하고 있다.

시인은 산수 속에서 노닐며 불평을 털어버리고 새 생명을 얻는다. 산수 자연은 시인의 바깥에 사물화되어 있지 않다. 자연 속 산과 물은 시인이 노래하는 가락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시인과 하나의 운율이 되고 시구가 되며 시인 자신이 되어야 '산수자연'을 노래한 '한시'의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에 안기고 싶은 인간의 성정은 그의 삶이 고단함에서 비롯되기 십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피가 펄펄 끓는 젊은이가 구태여 시골로 낙향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자연의 풍경이 유배지라면 더욱 그러하다. 연산군 때 미치광이로 불린 정희량은 '어둑어둑 비는 새벽까지 내리고 물가 여린 풀 위로 바람이 가득하다'며 자연에서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한시는 여백조차 마음을 담아낼 줄 아는 '정'(情)이 있다. 경치를 보더라도 그것이 비어 있는 공간 안에서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런 시들을 '경과 정'으로 구분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백의 시 '악양루에 올라'도 경과 정이 조화를 이루는 한시로 설명하며, 한시의 '흥'(興)겨움이 운율과 격 안에서 어떻게 녹여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한시'는 반드시 마음의 감동이나 자연경관을 찬미하는데만 머물지 않는다. 집안의 '가훈'(家訓)을 표현한 것, 즉 요즘으로 말하면 '생활시'에 해당되는 것들도 있다. 어쩔 수 없이 '한시'가 한자와 한문이 주 표현수단이고 그 문자를 이해하는 사람들에 국한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한시의 한 단면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사회상과 일상의 면면을 읽을 수 있다.

<한시의 세계>를 통해서 선대의 시인들이 노래한 마음의 세계를 한껏 누려보자. 한두 시구는 외어두어도 좋을 주옥같은 시들이 즐비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개인의 감정이나 풍경 안에 머물러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시가 출현하는 시대의 시적 생산의 사회적 배경이나 사조들에 대해서도 일정 정도 그려 보인다. 예컨대 당시(唐詩)가 풍미하던 시대 상황에 어떻게 예술로 이어지고, 또 그 시대의 시인들이 무엇을 담아내고 있으며 어떤 목표로 나아가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毋投與狗骨 개에게 뼈다귀를 주지 말아라
集類亂喍啀 떼로 모여 어지러이 다툴 것이니.
不獨其群戾 그 무리와 어긋날 뿐만 아니라
終應與主乖 종당에는 주인과도 어긋나리라.
尊周傳戰代 주나라를 높여 마음대로 정벌하고
安漢弑嬰孩 한나라를 편안히 하려 어린아이 죽이다니.
莫若嚴名分 명분을 엄하게 함만 같지 못하니
勤王作止偕 근왕하여 행동을 같이하여라."
(본문 200쪽) 김시습의 <옛일을 서술한다 述古>에서


시는 시대를 넘어선다. 아니 시대가 이미 공인하거나 표현된 것들을 넘어서려 한다. 그것을 '창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시인들의 시어는 현실세계에서 아직 열리지 않는 세계를 열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김시습 또한 타고난 천재성에도 끊임없이 창작의욕을 갖고 있음을 볼 때, '한자'라는 표현수단 이상의 어떤 '세계'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이었음을 우리가 만날 수 있다. 지은이는 우리의 '한시'가 궁극적으로 중국문학의 아류가 아님을 이 책을 보는 가장 큰 열쇠로 보고 있다.
<한시의 세계>, 심경호/문학동네 책값:15,000원

  2006-04-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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