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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동물들도 그들만의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잘못해서 야단을 맞을 때의 기죽은 표정, 원하는 것-예를 들어 먹을 것, 좋아하는 장난감
등을 얻고자 할 때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 기분이 좋아 신나게 웃는 듯한 얼굴, 토라진 채 집구석 어딘가에 자리를 틀고 안 나오는 경우, 등을
바닥에 대고 혼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며 가르릉 가르릉 행복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 주인의 짓궂은 장난이 귀찮아 심술이 난
경우……. 모든 이런 행동들은 동물들이 갖게 되는 감정에 의한 것이며, 특히나, 애완동물인 경우 인간과 함께 하는 생활, 사회화 과정에
의해 이런 감정표현능력이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
이와 같이 동물들도 사람과 똑같이 "기쁨,
슬픔, 고통, 불안, 분노, 절망"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슬픔과 고통, 절망감을 이겨내지 못한 동물들은 때때로 자살이라는 끔찍한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정말 동물도 자살을 하는가? 스테판 수오미 박사는 "인간의 극심한 우울증이 경우에 따라 자살로 이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동물에게도 우울증이
있는 이상 자살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고 이야기 한다.
다시 말해, 우리들은 무심코 잊고 지내지만, “동물도 사람처럼 기쁨, 슬픔,
고통, 불안, 분노, 절망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끔찍하지만 동물들도 자살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무리를 위해 자살을 감행한다고 알려진 대표적인 사례가 북유럽에 사는
레밍(나그네쥐)이다.
레밍은 3, 4년마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봄이나 가을 밤 집단으로 이동하다가 바닷가에서 막다른 벼랑에
다다르면 바다에 빠져버린다는 얘기. 늙은 쥐들이 스스로 ‘집단자살’을 행함으로써 나머지 젊은 무리가 배곯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준다는 해석이 세간에 회자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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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3년 프랑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나그네 쥐들의 집단
떼죽음이 천적들이 공격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무튼 이들의 집단적 떼죽음의 원인이 자살이든, 천적의 공격이든 개체수를 일정하게 보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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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를 위해 무모하게 몸을 던져 적과 싸우는 동물의 모습 역시 ‘자살’과 가깝게 보인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는 “꿀벌이나 개미처럼 무리를 지어 사는 사회성 곤충에게서 이런 사례들이 곧잘 발견된다.”며 “하지만 동료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꿀벌의 무리에서 일벌은 적이 나타나면 여왕벌을 보호하기 위해 침입자에게 ‘독침’을 꽂고는 한두 시간 후에 사망한다. 그런데 침의 돌기가
위로 솟아 있어 적의 몸에 꽂힌 침은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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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벌의
입장에서 적에게 침을 ‘쏘고 빠지는’ 작전이 더 안전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침이 잘 빠지지 않아 무리하게 힘을 주다 보니 그만 몸속 내장의
상당부분이 같이 터져 나오게 된다. 이를 두고 과연 자신의 의지대로 목숨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을까.
최 교수는 또 “개미는 적과 싸울 때 일단 상대를 물면 다른 적이 자신의 허리를 끊어도 절대 놓지 않는다.”며 “일단 몸을 추스르고 다시
적을 공격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고래나 물개 등이 해안가로 올라와 죽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렇게 대부분의 해양 동물들이 갑작스레 해안가로 올라오는 현상을 스트랜딩(stranding)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스트랜딩의
원인을 “어떤 이유에선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고래류는 폐렴 등에 걸려 스스로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뭍으로
올라오는 듯하며, 혼자서 혹은 2-3마리 혹은 수 십 마리가 함께 해안가로 올라오기도 한다.
사람들이 치료를 해서 돌려보내려고 하여도 이미 살려는 의지가 없는 상태가 대부분이라고 하며, 때로는 완벽하게 건강한 이들도 있다고 한다.
지극히 건강해 보이는 개체들이 집단자살을 하는 경우가 곧잘 발생하는데, 이에 대해서 최근 해양학자들이 해군이 사용하는 음파탐지기에서 발생하는
음파가 고래들을 놀라게 만들어 집단자살을 하게 한다며 음파탐지기를 사용하지 말 것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다양한 종류의 질병이 있는데 그 질병에 걸려 스스로 죽음이 다가옴을 느낄 때 자살을 한다고
생각된다. 사람들도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클 때 가끔씩 자살을 기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주로 아기 해양 동물들이 해안가로 자주 올라오는데, 이는 태풍이나 나쁜 기상상태로 인해 어미와 헤어졌거나, 어미가
그물에 걸리거나 사람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경우가 많다. 즉, 아기 해양 동물들이 혼자의 힘으로 살아 갈 수가 없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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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등으로 인해 바위에 부딪히거나, 짝짓기를 위해 라이벌과 격렬하게 싸운다거나 포식자에게
공격당했다가 살아났을 경우 등 상처를 입었을 때 올라온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초음파가 고래들에게 충격을 줘서 자살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동물들의 자살원인에 대해선, 그들이 말을 할 수 없는 이상, 어느 학자도 정확하게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동물들도 사람과 똑같이 기쁨과 슬픔, 불안, 분노,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다른 그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 동물들도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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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자살은 한 개체로서 보면 생명체 본능에 위배되는 사항이다. 생명체는 스스로
생존 본능이 자학본능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자살률은 전체 사망 원인의 약 1%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진화 유전학자들은 자살이 자연선택과 적응의 영역을 벗어난 탈선이나 병리학적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냉혹한 자연선택의 논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다윈의 진화론에 견주해서 보면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그것을 획득한 무리에게 이득을 주는 여러 특성들과 함께 생겨났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자살을 지시하는 하나의 유전자가 존재한다거나 자살이나 정신병을 좋은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 파괴적인 행동들에 합당한 진화적인 설명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 가족 안에서 자살을 하거나 그것을 시도하는 것이 자주
발견되는 것은 자살의 소질에 다분히 유전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 개체가 자살을 감행함으로써 친척들은 죽음으로부터 구조 받거나 남겨진 자원들을
보다 많이 향유할 수 있다. 그리고 생존자들은 희생한 개체의 유전자를 후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흰개미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노리는 적들에게
자신의 창자를 파열시켜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내용물들을 퍼붓는다.
심지어 어떤 곤충은 어미가 자신의 몸뚱이를 새끼들의 먹이로
제공한다. 두더지의 한 종류는 자신이 기생충에 감염 되었을 때 무리 전체가 감염되지 않도록 복잡한 두더지 굴의 공공 화장실쯤에 해당하는 곳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무른다. 감염된 놈은 절대로 그곳으로부터 기어 나오지 않고 강제로 먹이를 먹일 수도 없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해서 일가붙이에게 이득을 주는 것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엄마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죽는다거나 전쟁 영웅이 그의 동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다거나 하는 예들이 있다.
심각한 자살 시도를 한 사람들에게 그 직후, 이유를 물어보면 그들의 설명은 한결같이 이타적인 내용들이다. 물론 사람들은 복잡한 집단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순교에의 충동은 때로 복잡하고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신의 죽음에 의해서 이득을 보거나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시켜 줄 가족이 없는 경우에도 영혼을 바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우울한 상태나 그 상태에 머물려고 하는 경향은 때로 동물들에게 유리한 것이 될
수 있다. 우울한 상태는 일종의 감정적 동면의 역할을 해서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는 것이다. 또한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민감한 개체들은 그들의 동료들보다 포식자가 다가오는 소리라든가, 새로운 동료의 불확실한 몸짓과 같은 환경의 중요한 변화들을 잘 알아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낀다.
원숭이 무리를 연구해 보면 이런 원숭이들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숭이들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대가로 우울증에 빠질 확률이 높다. 우울한 상태가 너무 긴 기간동안 계속되거나 자주 반복되면 부적응의 증상이 생길 수 있고 심한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심한 괴로움을 수반하는 우울증이 될 수 있다. 우울증과 자살과의 관련성만은 명백해 보인다. 자살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자살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우울증이나 조울증과 같은 정신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이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물들도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감행하곤 한다. 붉은 털 원숭이(rhesus monkey)들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이 원숭이들이
피붙이, 혹은 짝을 잃거나 사회적 지위가 하락했을 때 약 20% 정도가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리고 이 원숭이들의 중추 신경계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노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의 분비량이 적어지는 것이 관찰 되었다. 우울증에 빠진 개체의 통계수치와 대뇌에서 일어난 화학적 변화
모두 사람의 경우와 같았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정상적인 값으로 보정해 주면 정신병적인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설명들도 결코 학자들 사이에 널리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단지, 현상적인 설명을 하기에 큰 무리가 없을 뿐이다.
<검수위원 : 세종대학교 화학생물학부 교수
황성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