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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600미터 이상 한라산에 1,600여 마리, 그 이하 저지대에 1,700여 마리, 합쳐서 제주 전역에
걸쳐 3,300여 마리의 야생 노루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몇몇 신문에서 밝힌 한라산 노루 분포에 대한 기사다. 이 기사를 접하며 나는
한라산에만 가면 손쉽게 노루를 볼 수 있으리라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 |
그러나 한라산에 도착한 첫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단 한 마리의 노루도 볼 수 없었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노루의 집단 서식지 한라산에서 노루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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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가 있긴 있는 겁니까?” 이튿날 한라산연구소에서 만난 신용만 연구원(53)은 허허, 웃어넘겼다.
“국립공원에만 약 천여 마리의 노루가 삽니다. 환경부, 산림청에서 말하는 노루의 개체수가 다 틀립니다만, 우리가 작년에 50미터씩 12군데를
선정해 발자국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립공원에만 1,200여 마리의 노루가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노루는 초원지대인 한라산
1,400미터 고지부터 정상까지 가장 많이 서식하고, 700800미터 고지 중산간 목장지대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노루는
좋아하는 먹이인 송악(잎이 연한 사철나무)이나 꽝꽝나무, 털진달래, 제주조릿대, 시로미, 구상나무, 엉겅퀴와 난초과 식물이 많은 곳, 연한 풀이
풍부한 초원지대와 목장, 골프장 근처에 많다고 한다. 또한 노루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초저녁부터 아침 해 뜨기 전까지 활동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미처 이 사실을 몰랐던 나로서는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시간에 노루를 찾아 헤맨 꼴이었다. “여기 어리목 공터에서도 노루를
볼 수 있습니다. 노루가 좋아하는 송악을 매일 뿌려놓거든요. 초저녁쯤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송악을 먹으러 나온 노루를 더러 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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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해질 무렵이 되자 송악을 뿌려놓은 어리목 공터(신용만 씨 조사에 따르면, 어리목에 나타나는 노루의
수는 3437마리쯤 된다고 한다)에 두 마리의 노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초롱초롱 맑은 눈망울에 귀는 쫑긋하고, 온몸이 회갈색 털에 뒤덮여
엉덩이만 하얗게(노루는 꼬리가 없다) 빛났다. 한 녀석은 암놈으로 보였고, 다른 녀석은 수놈인 듯하여 머리에는 봉긋하게 뿔이 올라와 있었다. 더
가까이 녀석들을 보기 위해 다가가자 녀석들은 순식간에 숲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연구소 직원들에 따르면 도망간 녀석들은 1년생
노루라고 한다. 알려져 있듯 노루는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고, 나이가 어릴수록 경계심도 더한 편이다. 대체로 한라산 노루는 몸길이 11.3미터,
키 70센티미터 안팎, 몸무게 1530킬로그램에 이르며, 앞 윗니와 송곳니가 없다. 따라서 질긴 섬유질 식물은 잘 먹지 못한다. 노루는 점프력이
뛰어나 보통 한번에 67미터까지 갈 수 있지만, 앞발이 뒷발보다 길이가 짧아 내리막 비탈에서는 잘 뛰지 못한다. 노루의 나이는 이빨의 닳음
상태나 뿔을 보고 판별하는데, 수명은 보통 12년 정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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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노루는 일부일처제(과거에는 노루의 개체수가 적었기 때문)로 알려져 있었지만, 연구소 관찰에 따르면
한라산 노루는 일부다처제 생활을 한다. 서열(뿔이 클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서열이 높다)이 높은 수놈이 다수의 암놈을 거느려 짝짓기를 한다는
것이다.
새끼는 한번에 12마리 정도를 낳는데, 모성애가 강한 암놈은 다음 새끼를 낳을 때까지 새끼를 보호하며 언제나 함께 다닌다.
이 때 수놈은 약간 떨어져 자신의 가족을 보호해주는 노릇을 한다. 소가족 생활을 하는 노루는 평균 34마리가 한 가족으로 다니며, 많게는
78마리가 한 가족을 이뤄 무리이동을 한다. 새끼는 냄새를 통해 어미와 가족을 확인하고, 어미는 자기 새끼를 부를 때 ‘찌지찌찌짓’ 소리를 내어
부른다.
한라산에 도착한 셋째날. 저녁이 되면서 한라산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3일로 예정돼 있던 일정은 눈이 내리는 바람에
하루를 더 한라산에 머물기로 했다. 눈이 내리면 어리목 공터에 더 많은 노루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한라산연구소 직원들이 귀띔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일찍 체인을 두른 차를 타고 1100도로를 기어올라 어리목에 도착해보니, 눈은 20센티미터 이상 공터에 쌓여
있었다. 연구소 직원이 공터에 송악을 뿌린 뒤 10분쯤 지났을까. 두 마리의 노루가 공터에 나타나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50미터쯤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들은 곧 숲으로 몸을 숨겨버렸다.
이틀 전에 보았던 1년생 녀석들이다. 다시 1시간쯤을 기다리자 다른 일가족
3마리가 나타났다. 어미 노루 한 마리와 두 마리의 새끼 노루였다. 녀석들은 40미터쯤 가까이 다가가도 가끔 고개를 들어 살펴볼 뿐 먹이를 먹는
데 여념이 없었다. 10분, 20분. 그러나 모 방송국에서 나온 카메라맨이 욕심을 내어 10미터쯤 접근하자 녀석들은 아쉬운 듯 숲으로 총총
사라졌다.
한라산에 눈이 내리면 노루들은 먹이를 찾아 중산간 초원으로 내려온다. 사실 눈은 노루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기도 한다.
초원이 펼쳐진 중산간에는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가 기다리고 있고, 밀렵꾼들이 노루 길목에 설치해 놓은 올무나 덫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눈이 내리면 중산간 목장지대의 굶주린 개들이 들개로 돌변해 노루를 사냥하기도 한다. 그나마 오늘날 한라산이 노루의
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에는 노루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민간단체와 한라산연구소)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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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루 사랑은 1977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라산에는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노루 한 마리 볼 수 없을
정도로 노루의 개체수가 적었다. 무분별한 밀렵으로 노루가 거의 멸종 위기까지 내몰렸기 때문이다.
그는 ’77년부터 10여 년 동안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올무와 덫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이후 ’87년부터 ’90년까지는 민관군 합동으로 올무 철거 작업을 벌였다. 그러자
’90년대 초반부터 노루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노루를 사진에 담기 시작한 것은 ’89년부터. 노루의 소중함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작한 것이 오늘날 그를 노루 전문가로 만들었다.
그는 어리목 광장에 노루 먹이를 주기 시작하면서 몇 년에 걸쳐 노루관찰일기를
쓰기도 했으며, 노루의 출산과 모성애, 영역싸움에 대한 다양한 사진을 찍어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의 27년에 걸친 노루 사랑은 책상 앞이 아니라
현장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더욱 값진 것이고, 눈으로 직접 관찰하며 경험한 것이므로 더욱 소중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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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서도 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있는 어리목이 노루를 관찰하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다. 어리목에 가려면
제주시에서 99번 1100도로를 타고 가다 어리목 휴게소로 좌회전해 올라가면 된다. 그 밖에도 초원이 많은 중산간 산록도로변에서도 드물게 노루를
관찰할 수 있으며, 제주CC, 나인브릿지 골프장 근처에도 자주 노루가 출현한다. 봄에는 정상 부근 진달래밭 인근에서 자주 노루를 만날 수
있다.
문의 :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064-713-9950, 한라산연구소
713-99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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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을 중심으로 약 360여 개의 오름을 거느린 한라산은 다 알다시피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1,950미터)이다. 정상 부분은 초원지대와 원시림이 함께 발달해 있고, 중산간은 오름과 초원이 이어져 해안까지 뻗어 있다. 또한 한라산은
높이에 따라 서로 다른 기후를 띠면서 다양한 식물군을 키워낼 뿐만 아니라 초원지대 곳곳에 형성된 습지 역시 다양한 식생을 거느리고
있다.
이런 한라산의 환경은 노루에게도 천혜의 서식환경을 제공해 산 전체를 오늘날 ‘노루의 천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노루의 천국은
한라산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한라산은 노루가 있기에 오늘날 생태적으로 주목받는 명산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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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용한 시인 | 사진·심병우
사진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