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채권있어도 파산할 수 있나요

바보처럼1 2006. 8. 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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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채권 있어도 파산할 수 있나요

Q3년 전부터 사업하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줬습니다. 그럭저럭 원금이 1억원을 넘었고, 몇달 전부터 이자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는 급기야 사업이 망해서 재기하면 갚는다며 1억원짜리 약속어음 하나 공증해주고 잠적했습니다. 문제는 저도 은행과 카드회사,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쓰고 있던 처지여서, 친구가 손을 드니 제 빚 갚기도 막막합니다. 변호사회에서 소개해준 사무실에 갔더니 저는 친구에게 받을 돈을 수금해서 그것을 은행, 카드사와 같은 채권자들에게 갚을 때까지 면책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친구가 돈을 벌어서 갚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절망스럽습니다.

- 김근식(42세) -

A일반 민사법은 채권자의 권리실현이라는 요소에 집착합니다. 즉, 채무자가 갚지 않을 때 채권자는 법에 호소할 수 있고, 사법기관은 효율적이기 때문에 법은 실효적으로 잘 지켜질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에 충실한 사람은,1억원을 지급하겠다는 채무자의 약속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채권의 가치는 채무자의 지급의사와 지급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채무자의 인적 자본을 강제로 팔아서 실현할 수 없는 것이 현대법의 원칙인 이상 채무자가 지급할 의사와 능력이 없다면 사실상 채권가치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근식씨의 친구가 실제로 사업이 망한 것이 사실이라면 김근식씨가 민사법에 호소해 보았자 효과가 없을 것이고, 앞으로 재기해서 갚겠다고 하는 약속을 강제할 수 없는 이상 그 약속도 경제적인 가치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아마도 김근식씨가 상담한 변호사는 김근식씨가 친구에게서 받은 약속어음의 가치가 실현될 것을 전제로 하고 그것을 추심하여 그 재산을 채권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파산절차를 상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은 파산보호를 거부당합니다. 금융기관은 채무자가 갚지 않아 지급불능에 이르는 것인데, 경제적 가치를 잃은 부실채권을 모두 실현할 때까지는 어떠한 절차도 종결될 수 없다고 한다면 망한 은행은 늘 과거에 매여 있게 될 것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은행도 파산선고를 받고 파산절차에 의하여 정리됩니다.

경제적 실질에 치중하는 파산법은 형식적인 강제수단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파산법은 재산을 현재 있는 상태 그대로 현금화하여 그것을 채권단에 귀속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채권에 대하여도 그 액면대로 실현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즉, 장래의 채권이나 조건부 채권에 관하여도 그것이 실현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타인에게 매각하는 방법으로 현금화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김근식씨의 경우에도 파산법원은 김근식씨 친구에 대한 약속어음 채권을 제3자에게 팔아서 받은 현금을 채권자에게 귀속시키도록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파산법원이 김근식씨의 약속어음 채권을 수금할 때까지 절차를 지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한편 친구가 현재 지급의사와 능력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법원이 인정하면, 법원은 그나마 파산절차도 진행하지 않고 파산절차를 폐지합니다. 예를 들어 채무자인 김근식씨의 친구가 파산선고를 받았다든지, 형사사건으로 고소되어 기소중지되었다든지, 장기간 잠적하여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든지 하는 사유가 존재한다면 법원은 이와 같은 간소화된 절차를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기사일자 : 2006-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