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설날 아침에...........김 종길

바보처럼1 2006. 11. 9. 22:18

<설날 아침에>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여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인생의 길은 차갑고 험난해도 착하고 슬기롭게 살아야 한다는, 삶게 달관한 건실한 인생관을 주제로 하고 있다.

 

 

<춘 니(春泥)>

 

여자대학은 크림빛 건물이었다.

구두창에 붙는 진흙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알맞게 숨이 차는 언덕길 끝은

파릇한 보리밭--

어디서 연식 정구의 흰 공 퉁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기엔 아직 철이 일렀지만

언덕 위에선,

신입생들이 노고치리처럼 재재거리고  있었다.

 

*현대식 매력에 넘치는 표현을 구사한 사생시(寫生詩).

새 봄의 활기와 의욕을 느끼게 한다.

 

 

<성 탄 제>

 

가슴에 눈물이 말랐듯이

눈도 오지 않는 하늘

 

저무는 거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동녘 하늘에 그 별을 찾아 본다.

 

베들레헴은 먼 고장

이미 숱한 이 날이 거듭했건만

 

이제 나직이 귓가에 들리는 것은

지친 낙타의 울음 소린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빈 손가방 속에 들었을 리 없어도

 

어디메 또 다시 그런 탄생이 있어

추운 먼 길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

 

나의 마리아는

때묻은 무명옷을 걸치고 있어도 좋다.

 

호롱불 켠 판잣집이나 대합실 같은 데라도

짚을 깐 오양깐보다는 문명되지 않는가?

 

---허나 이런 생각은 부질없는 것

오늘 하룻밤만의 감상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잠오듯 흰 눈이라도 내리렴

함박꽃처럼 선의의 흰 눈이라도 내리렴!

 

*현대 사회에서 크리스머스의 정신은 사라지고 그 형식만이 남아 있음을 반성하고 있다.

*주제는 성탄제 정신에 대한 향수.

 

 

 

<첫 서 리>

 

오늘 아침엔 바람이 차왔어요.

밖에 나갔던 동생이 그랬어요.

 

웃는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차운 두 손을 홀홀 불었어요.

 

벌써 그렇게 춥다고 하느냐고

놀려 줄래도 놀릴 수 없쟎아요?

 

밤새에 내린 첫서리 시리다고

단풍잎새도 저렇게 붉었는데.....

 

*소재는 첫서리.

주제는 늦가을의 계절감.

계절감을 동생의 말과 동작으로 보여 주고, 다시 시각적인 단풍의 빨간 잎으로 확인시키고 있다.

기승전결로 짜인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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