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에>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여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인생의 길은 차갑고 험난해도 착하고 슬기롭게 살아야 한다는, 삶게 달관한 건실한 인생관을 주제로 하고 있다.
<춘 니(春泥)>
여자대학은 크림빛 건물이었다.
구두창에 붙는 진흙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알맞게 숨이 차는 언덕길 끝은
파릇한 보리밭--
어디서 연식 정구의 흰 공 퉁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기엔 아직 철이 일렀지만
언덕 위에선,
신입생들이 노고치리처럼 재재거리고 있었다.
*현대식 매력에 넘치는 표현을 구사한 사생시(寫生詩).
새 봄의 활기와 의욕을 느끼게 한다.
<성 탄 제>
가슴에 눈물이 말랐듯이
눈도 오지 않는 하늘
저무는 거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동녘 하늘에 그 별을 찾아 본다.
베들레헴은 먼 고장
이미 숱한 이 날이 거듭했건만
이제 나직이 귓가에 들리는 것은
지친 낙타의 울음 소린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빈 손가방 속에 들었을 리 없어도
어디메 또 다시 그런 탄생이 있어
추운 먼 길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
나의 마리아는
때묻은 무명옷을 걸치고 있어도 좋다.
호롱불 켠 판잣집이나 대합실 같은 데라도
짚을 깐 오양깐보다는 문명되지 않는가?
---허나 이런 생각은 부질없는 것
오늘 하룻밤만의 감상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잠오듯 흰 눈이라도 내리렴
함박꽃처럼 선의의 흰 눈이라도 내리렴!
*현대 사회에서 크리스머스의 정신은 사라지고 그 형식만이 남아 있음을 반성하고 있다.
*주제는 성탄제 정신에 대한 향수.
<첫 서 리>
오늘 아침엔 바람이 차왔어요.
밖에 나갔던 동생이 그랬어요.
웃는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차운 두 손을 홀홀 불었어요.
벌써 그렇게 춥다고 하느냐고
놀려 줄래도 놀릴 수 없쟎아요?
밤새에 내린 첫서리 시리다고
단풍잎새도 저렇게 붉었는데.....
*소재는 첫서리.
주제는 늦가을의 계절감.
계절감을 동생의 말과 동작으로 보여 주고, 다시 시각적인 단풍의 빨간 잎으로 확인시키고 있다.
기승전결로 짜인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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