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

양평 청계산자락서 칩거 동양화가 김근중씨

바보처럼1 2007. 7. 10. 21:39
[전원속의 작가들]양평 청계산자락서 칩거 동양화가 김근중씨
"기교란 부끄러움 감추는것
전 그림을 꾸미지 않습니다"
자연은 뭐라 말하지 않고 닮으라 한다. 무심(無心)한 흰구름이 두둥실 파란 하늘을 말없이 벗 삼는 것처럼. 산골의 밤이 더 적막한 것도 이때문일게다. 이맘때면 밤바람도 그래서 더욱 외롭기 마련. 발버둥에 숲이 스산스럽게 울부짖는다. 요며칠 문 노크소리가 잦아진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바람을 타는 작가도 지난밤 잠을 못이뤘다.

화가 김근중(48). 푸석한 얼굴로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 아침도 작업실 캔버스 앞에 섰다. 그가 이처럼 이곳 양평 양서면 청계산 자락에 똬리를 튼 지도 벌써 9년째. 서울도심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먼곳은 아니지만 산이 에워싸 칩거하기엔 딱 좋은 장소다.

60여평의 작업실은 산 언덕배기에 소처럼 누워 있다. 뚝심 센 작가를 빼닮으려는 듯이. 작업실 창문 너머론 청계산이 한폭의 풍경화가 되어 달려 들어온다. 넋이 나간 듯 바라보는 뒤통수를 향해 작가가 말문을 연다. “무심을 얻고 싶었어요”.

지난밤 작가는 이렇게 읊었다. “늦은 저녁 소슬한 바람/어두운 산골에 잦아드네/때론 아련한 온기 가슴을 스치는데/간간이 흔들리는 풍경소리 무성한 잡초위에 서성이네/멀리 귓가에 들리는 물소리 누군가 기다림은/행여 님이실까 돌아보는 창가에/개 한마리 뒤돌아 겁먹은 눈.”

작가의 마음속에 무엇이 요동치고 있는 것일까. “한주에 서너차례 인사동 화랑가를 배회해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욕심에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거지요.” 명예, 물질, 수준있는 작품 등 모두가 집착이 되어 작가 주변을 옥죄었다.

“우선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는 절박함에서 이곳을 택했습니다. 내 앞에 나를 먼저 바로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뭔가 얻으려는 몸짓이 헛됨을 보기까지 많은 길을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작가는 최선을 다할 뿐 꾸미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렇지 않을 땐 가차없이 뭉개버려 그자체가 작품이 되기도 한다. “부끄러움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고 꾸밈은 그것을 감추려는 행위지요.” 그제서야 속에서 더하라 하지 않았다.

그의 작업방식은 수도자의 모습을 연상케 해준다. 색색의 돌가루와 접착제로 이뤄진 혼합재료를 붓으로 발라 4∼5번 겹칠을 한다. 그리곤 그 캔버스를 수도가로 가져가 파란 수세미로 한없이 긁어낸다. “표현욕구를 갈아내는 과정이지요. 포만감이 느껴질 때까지 작업은 계속되고 어느 끝지점에선가 모든 욕망과 의문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색을 보충하고 또 비워내는 작업에서 작가는 비움의 철학을 터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지금도 자신의 심연에 어떤 욕망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 이전엔 꽁꽁 감싸 안으려다 열병이 되기도 했다. “욕구가 배출될 때 작품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져요. 단점을 드러내면 장점이 되듯 들끓는 내부의 불길을 편하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화를 풀고 욕을 하면 삶의 에너지가 생기는 이치다. 그림도 자연스럽게 좋은 형상으로 드러나게 마련. 진정한 욕과 화가 상대를 즐겁게 해주듯이 작가와 관람자 모두가 기쁨을 소통하게 된다는 것. 욕쟁이 할머니가 그렇듯이. 욕망과 진정한 화해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정원 잔디밭 귀퉁이에 호박 넝쿨이 일직선상으로 뻗어 있다. 비록 색은 바랬지만 꿈틀거림은 여전하다. “바다위의 범선 같아요.” 작가는 호박 넝쿨에서 생명력을 읽어낸다. “바로 존재의 힘이지요. 우리는 뭐하고 있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아요.” 짜증만 내고 있는 모습이 부끄럽단다. “누구나 다 우악스러운 존재의 힘을 가지고 있지요. 스스로의 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함을 요즘에서야 깨닫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자화상이 ‘모내기할 사람이 신사양복 입고 딴전을 핀 꼴’이라 한다.

“이전의 화면엔 무수히 많은 형상을 그려 넣어 현대인의 복잡한 심리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내면의 정글’시리즈가 바로 그것. 작가는 향후 작업방향을 존재의 울림에 충실한 쪽으로 정했다.

“살아있는 감정욕구에 충실한 본능적 작업만이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합니다.” 동양화를 어떤 카테고리에 가둬놓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몸 안에 수많은 역사가 누적되어 있습니다. 진실되게 풀어내는 것이 바로 전통이지요.” 존재의 울림이 생생하게 꽃필 기회를 앗아가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내가 주인이 되어 유전인자에 근거한 작업이 이뤄지면 되는 것입니다.” 작가는 그래서 ‘동양화가 죽어야 동양화가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대만유학시절 그가 자주 찾은 고궁박물원은 스승이 되어 주었다. “처음엔 그림속 형상만 보였어요. 2년 정도 지나자 비로소 먹색이 눈에 들어 왔지요.” 그는 대가들의 먹색이 처음엔 한결같이 지저분하고 칙칙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감정이 푹푹 묻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먹빛에 깊이가 느껴졌어요.” 그림은 기교가 아님을 깨치는 순간이었다. 진실한 것은 깨끗한 것이 아니라는 어느 원로 화백의 말이 비로소 가슴에 다가왔다. 김근중은 수도자적 붓질을 통해 지금 우리속에 내재한 ‘마음의 방’ 문을 두드리고 있다. 마치 작업실 창살을 노크하는 바람인 양.

편완식기자/wansik@segye.com

<연보>

▲1955년 충남 예산 출생 ▲1977년 홍익대 동양화과 졸업 ▲1986년 대만문화대학교 예술대학원 졸업 ▲동아미술상(1990년) ▲토탈미술상(1993년) ▲호암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작품 소장 ▲경원대 교수(현재)

<사진>작업실 바닥이 놀이터인 양 벌렁 드러누워 마냥 즐거워 하는 김근중씨. 그는 “마음 편한 작업만이 기쁨을 주는 그림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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