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

춘천서 터전 잡은 소설가 오정희씨

바보처럼1 2007. 7. 10. 22:19
[전원속의 작가들]춘천서 터전 잡은소설가 오 정 희 씨
"경춘선 오고가며 길떠남의 미학 체득"
두어 시간 남짓한 경춘선 서울∼춘천 구간. 대학 시절 청평, 가평, 강촌을 오가며 통기타 메고 탔던 기억이 아물아물 한 그 기차에 올랐다. 서울의 끝자락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3월 폭설’이 수놓은 경춘가도와 꽈배기를 꼬며 거침없이 달렸다. 눈에 다소곳이 파묻힌 산과 강이 도시 속의 일상에 매여 있던 심신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꾸려온 음식을 나눠주는 옆자리의 청춘들은 눈 덮인 남이섬을 간다며 깔깔댄다. 지나는 역 구내의 향나무들은 장군의 사열을 기다리며 도열해 있는 장병처럼 큰 모자를 뒤집어쓴 듯 저마다 한 광주리씩 눈을 이고 서 있다.

지난 6일 소설가 오정희( 吳貞姬·57)씨를 만나기 위해 몸을 실은 기차는 설국(雪國)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게 마련인가 보다. 객차 안이 떠들썩하다. 모두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떠남은 작가에겐 소설이 되고 시가 되기도 한다. 기차가 멈추고 함박눈 같은 그가 거기에 있었다.

최근 등단 36년 만에 첫 장편소설 ‘목련꽃 피는 날’(계간 ‘문학과사회’) 연재를 시작한 오씨 관련 기사를 쓰면서 기자는 고심 끝에 ‘수식어가 필요 없는 소설가’라는 수식어를 사용했다. 스스로는 ‘작가 생활 30년이 넘도록 창작집 여섯 권뿐인 과작(寡作)의 작가’라며 겸손해하지만, ‘만년 문학청년’이라 불리며 모두가 우러르는 ‘우리 시대의 가장 완벽한 작가’를 단어 몇 개로 규정하기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실제 1999년엔 문인 100명이 뽑은 ‘21세기에 남을 고전’에 가장 많은 8편이나 추천되는 저력을 보였다.

작가의 집은 남춘천역에서 택시로 5분 거리에 있었다. 춘천 시내 중심가와는 아무 상관없는 듯, 외떨어진 퇴계동의 한 아파트 11층이었다. 고만고만한 집들과 가게들이 길섶을 따라 남루하게 늘어져 있고, 마음씨 착해 보이는 사람들이 여유 있게 오고 갔다.

거물 작가의 일상은 의외로 평범하고 단조로웠다. 출근하는 남편(박용수 강원대 총장) 뒷바라지하고, 서울에서 자취하는 두 자녀 살림 챙겨주는 평범한 ‘주부’의 역할이 생활의 과반이다. 작가로서 ‘개점휴업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 읽혀졌다. 장보기와 음식 장만과 설거지와 빨래와 청소가 날마다, 시간마다 작가를 부려먹고 있었다. 자녀 둘을 키워낸 억척 주부의 손마디로 틈틈이 원고지를 채워 온 것이다. 흔히 말하는 ‘투 잡스’가 어디 쉬운 일인가. 잠을 줄이든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든지 해야 겨우 병행할 수 있는 고행이 아니던가. ‘미세한 필치로 삶의 양면성을 정교하게 묘사’해 온 작가의 가쁜 숨소리가 느껴온다.

작가의 동선은 제한돼 있다. 안방 거실 부엌 서재 등 실내가 거반이고, 인근 안마산 등산과 근린공원 산책이 전부이다. 한국전쟁 직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홍성과 인천 등지를 떠돌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서울에서 나머지 초등학교와 중·고·대학을 나와 곧장 결혼해 78년 춘천에 정착했으니 제대로 뿌리내릴 만한 곳이 없었다. 함께 수다 떨 친한 친구도, 자주 어울리는 문우회도 갖지 않은 작가는 하루의 대부분을 ‘노마’ ‘바우’로 이름 지은 두 마리의 개와 승강이질하며 하루를 보낸다. 두문불출이라는 말이 제격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감초처럼 보여주는 ‘떠남’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신문하듯 물었다. 눈치 못 채게. 드디어 발견했다. 작가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기차를 탄다. 명분은 서울로 분가한 자식을 보러 가는 것이지만 일상의 탈출이자, 낯선 곳으로의 이동이다. 오씨가 잉태시킨 주인공들의 길 떠남은 작가의 여정을 닮았다. 작가의 분신들은 때론 한 달, 때론 두 달을 훌쩍 떠나지만 실제의 작가는 이런저런 굴레에 막혀 당일치기 혹은 일박이일이 고작이다. 다행히 60줄이 가까워지고, 손자 볼 날이 머지않은 중견 작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어 좋다.

몇 해 전부터는 길 떠남의 일정이 좀 길어졌다. 미국에서, 남미에서, 유럽에서 자꾸 오란다. 오씨의 주옥 같은 작품들이 번역 출판되면서 우리에겐 낯선 ‘작품 낭독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엔 독일 독자들이 뽑은 해외문학작품상인 ‘리베라투르 문학상’을 받는 기쁨도 누렸다. 상금은 적은 액수지만 지갑 안 열고 짧지 않은 여행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 84년엔 교환교수로 가는 남편을 따라 2년 동안 미국살이도 했다. 단편소설 ‘파로호’를 생산한 것은 그 덕분이다.

틈틈이 문학 강연과 문예지·신문사 등의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위촉받아 또 짧은 여행길에 나선다. 이래저래 오씨의 길 떠남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엔 유년 시절의 기억이 듬뿍 배어 있는 인천을 슬쩍 다녀왔다. 초등학교 시절 4년을 살았고, ‘중국인 거리’의 배경이 됐던 곳이자, 큰맘 먹고 시작한 첫 장편 ‘목련꽃 피는 날’의 배경이기도 하다.

오씨는 춘천에 캠프를 치고 서울로, 인천으로, 원주로, 나아가 미국으로, 유럽으로 원을 그리듯 떠났다가 돌아옴을 반복하고 있다. 춘천은 이제 작가의 새 고향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작가의 손놀림과 걸음걸이도 빨라질 것 같다. 시를 한 번도 써 보지 않았다는 작가의 봄맞이 글을 권한다.

“무심히 달력을 또 한 장 뜯어내다가 문득 깜짝 놀라는 마음이 된다. 어느새 3월, 보랏빛 연연한 제비꽃 사진이 박힌 달력에 봄이 지레 먼저 찾아와 있다. 아직 바람결이 차고 맵지만 햇살은 밝고 눈부시다. 옷 속을 파고드는 쌀쌀한 바람은 곧 꽃이 피리라는 예고이리라. 자주 오르는 산길, 깊고 그늘진 골짜기에는 아직도 희끗희끗한 잔설이 완강하게 남아 있지만 그럴싸해서 그런지 메마른 나뭇가지에도 아련한 푸른 빛이 어리는 듯하고, 산 전체가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소생하고자 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찬 듯 느껴지기도 한다.”

춘천=글·사진 조정진기자/jjj@segye.com

<연보>▲47년 서울생 ▲서라벌예대 졸업 ▲초등학교 3학년 때 경기도 백일장 특선(56), 중앙일보 신춘문예 ‘완구점 여인’ 당선(68) ▲단편 ‘번제’(70) ‘봄날’(71) ‘적요’(76) ‘불의 강’(77) ‘저녁의 게임’ ‘중국인 거리’(79년) ‘유년의 뜰’ ‘어둠의 집’(80) ‘별사’(81) ‘동경’ ‘바람의 넋’(82) ‘불망비’(83) ‘불꽃놀이’(86) ‘그림자 밟기’(87) ‘파로호’(89) ‘옛우물’(94) ‘새’(95) ‘얼굴’(98), 장편동화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93), 중편 ‘구부러진 길 저쪽’(95) 등 ▲이상문학상(79) 동인문학상(82) 오영수문학상 동서문학상(96) 독일 리베라투르 문학상(2003)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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