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 興 4>
두 보
聞道長安似奕棋
문도장안사혁기
百年世事不勝悲
백년세사불승비
王侯第宅皆新主
왕후제택개신주
文武衣冠異昔時
문무의관이석시
直北關山金鼓振
직북관산금고진
征西車馬羽書馳
정서거마우서치
魚龍寂寞秋江冷
어룡적막추강냉
故國平居有所思
고국평거유소사
바둑판 처럼
변하는 서울 소식.
세상 일은
참 알 수가 없어..... .
왕후(王侯)의 저택에는
새 주인 들어 앉고
벼슬하는 사람도
옛 사람들 아니라데.
북녘 구경에는
북 소리 요란하고
서쪽으론 말이
글을 갖고 달려 가고.
용은 잠이 들어
가을 강물 차가운데
생각은 멀리
서울을 휘돈다.
*문도: 듣건대
*혁기:바둑을 두는 것.
*불승비:슬픔을 못이김.
*제택:집.저택
*의관: 의관을 한 사람. 즉 고관.
*금고:종과 북.
*우서:새의 깃을 단 군용문서. 새날개를 다는 것은 긴급한 표시.
*어룡;용의 일종.어룡은 가을로 밤을 삼기 때문에 ,추분이 되면 못에 들어가 잠을 잔다.
*고원:고향인 장안.
*평거; 평상
*전반은 長安의 변천을 말하여 매우 애절하다. 장안은 A.D756년에 安祿山에게 점령되었고, 다음 해에는 郭子儀가 거느리는 관군이 이를 수복했다. 763년에는 다시 吐蕃에게 빼았겼다가 곽자의에 의해서 되찾는 등,겨우 7년 동안에 네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玄宗과 귀족들은 도망치고, 그들의 집에는 새 집권자들이 들어 앉았다. 이민족 출신의 장군들과 내시들이 고관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후반은 변경의 전쟁을 말하여 제 감회로 끝을 맺었다. 755년 안록산은 낙양을 뺏고 익년에는 장안을 점령했다. 757년 안록산은아들 慶緖의 손에 죽는 다. 그러나 다음해에는 史思明이 반란에 가담해 그 세력이 더 커진다.759년 사사명은 안경서를 죽이고 大燕皇帝가 되니, 소위 이 <安史의 亂>이 평정된 것은 763년 代宗의 廣德2년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난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같은 해 9월에 回紇(위글族)이 침입하니 <西를 향해 달리는 군마>는 이를 막기 위함이었고, 이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吐蕃(티베트족)이 처 들어오니<북녁 국경>에서 벌어진 전쟁이었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며 두보는 자기에게 나라를 구하는 재주와 기회가 없음을 탄하였다. 가을이 되어,물 속에서 움찍 못하고 있는 魚龍과도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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