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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 서너 문장을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꾹 참고 끝까지 다 읽고 나도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도 되지 않는 글을 순서를 기억하고 말까지 하라니 내심 도대체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러나 윗글에 ‘세탁하기’라는 제목을 붙이고 다시 읽어보면 아하,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겠고 순서도 기억할 수 있으며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게 됩니다.
기억은 기억순서와 기억용량 그리고 기억시간에 따라 감각 기억, 단기 기억, 장기 기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진이나 녹음기처럼 모든 것을 찰나적으로 다 기억할 수 있는 감각 기억과 감각 기억 가운데 주의집중한 것을 몇십 초 동안 ‘마법의 숫자 7’만큼 기억할 수 있는 단기 기억이 있습니다. 단기 기억 속 정보 중에는 몇십 초 동안만 단기 기억 속에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정보가 있는가 하면, 장기 기억으로 변환되어 평생을 망각되지 않고 남아 있는 정보도 있습니다.
장기 기억은 기억할 수 있는 용량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히말라야 산맥 위의 녹지 않은 눈을 만년설이라 표현하는 것처럼 인지심리학자들은 장기 기억을 ‘만년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합니다. 즉, 좋은 장기 기억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단기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지 않고 장기 기억으로 변환되어 우수한 장기 기억을 가지게 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위 글에서처럼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큰 틀을 알고 있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우수한 기억력을 가지게 합니다. 언어 시간이라면 그 시간이 어학 시간인지 문학 시간인지 알고 공부할 때와 모르고 공부할 때는 학습 효과, 다른 말로 기억력에서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즉, 사전 지식이 많을수록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기억력은 ‘빈익빈 부익부’, 아는 것이 많은 분야일수록 더 기억이 잘되고 모르는 분야일수록 기억하기가 어려운 전문가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갓 입학한 어린 학생이 어학 시간과 문학 시간을 바로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번 해당 수업 시간이 반복되어야 비로소 구분이 되겠지요. 전문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연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무조건 별 생각 없이 되뇌기만을 하는 단순 반복 연습과 정보간의 관계를 생각해가며 되뇌는 정교 반복 연습이 있습니다. 이름 하나를 기억하기 위해서도 이름을 듣고, 소리 내 말해 보고, 써 보고, 이름의 의미를 떠올려 보는 일을 함께 했을 때가 더 잘 기억됩니다.
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연습을 하루를 하지 않으면 자신만이 알고, 이틀을 하지 않으면 자신과 스승만이 알고, 사흘을 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전문가조차도 이러할진대 초보자는 어떠하겠습니까. 자신들이 배우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초보자인 학생들이 기억을 잘 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연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수한 기억력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연습의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