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책을 읽고 저도 참 찡한 순간을 여러 번 겪었어요. 선생님의 글 중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렇게 비참하게 하실 수가 있습니까’라는 구절이 있어요. 빛을 내는 스타는 대중에게 빚을 진 존재들인데, 선생님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그 빚을 계속 상환하는 것 같아요.” 지난 10일 탤런트 김혜자씨와 주철환 교수(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가 ‘경영자 독서 모임’(Management Book Society)의 강사로 참여해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MBS는 산업정책연구원이 마련한 모임이다. 독서모임 회원들이 김씨의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읽고 저자를 초청하자 그를 잘 아는 주 교수가 함께 나온 것이다. 이날 모임에는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과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 권경현 교보문고 사장, 백낙환 백병원 이사장, 어진 안국약품 사장, 이화경 온 미디어 사장 등 내로라하는 기업체의 경영자와 일반인 80여명이 청강했다. 중량급 청강생이 모여 강의를 듣는 이런 모습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만 되면 서울 중구 을지로 1가 하나은행 본점 21층 대강당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모임 탄생의 산파역을 맡은 조 이사장은 한국경영학회 회장으로 기업체의 CEO가 문화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1995년 MBS를 만들었다. 95년 1기 독서모임이 시작된 이후 기수마다 20권의 책을 골라 읽고 매주 월요일 저자를 초청해 2시간 동안 강의를 들어왔다. 이 모임에서 읽고 토론하는 책은 간행된 지 6개월 이내의 신간이다. 벌써 19기째인 올해 회원들이 선택한 책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비롯해 인문서는 물론 경제경영서, 과학서, 예술서 등을 망라하고 있다. 회원들은 일주일 동안 책을 먼저 읽은 뒤 저자나 역자를 초청해 책과 관련된 강의를 듣는다. 조 이사장은 사교모임에서 철저히 벗어난 독서경영의 테두리로 모임의 성격을 한정하도록 했다. “MBS는 유명인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운용되는 다른 독서모임들과는 성격이 판이합니다. 그래서 9시 강의가 끝나면 일종의 ‘뒤풀이’격의 2차 만남도 없습니다.” 1년 동안 2기에 걸쳐 MBS 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하면 총 40권의 양서를 읽고 저자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시간이 없는 CEO들이지만 출석회원 80명과 통신회원 200명이 꾸준히 참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온전히 책이 좋아 참여하게 된 사람이 대다수여서 친목모임 정도로 생각했다가 참석한 사람은 곧 실망하고 만다. 교수이면서 산업정책연구원의 CEO이기도 한 조 이사장은 ‘오사카 상인들’(효형출판)의 저자인 홍하상씨가 지난해 이 모임의 강연에서 CEO들에게 들려준 말에 특히 공감했다. “우리나라에서 오래됐다는 두산그룹의 역사가 10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오사카에는 1400년 된 기업이 아직도 성업 중입니다. 홍 작가는 오래된 기업을 이끌어 온 오사카 상인들에게는 세 가지 철학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사장은 현장에 살아야 하고,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눈에 닿지 않은 공사 현장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말입니다. 많은 CEO들이 홍 작가의 말에 깨달은 바가 많았을 것입니다.” 서울대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조 이사장이 남들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경영과 책’의 접목을 시도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1990년대 초반 독서단체인 ‘한우리 독서운동’ 이사장을 지내면서 아이들만이 아니라 성인을 위한 독서회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CEO들은 일상이 바쁘지만 끊임없이 지적 욕구에 매달리는 사람들입니다. 경제경영 서적을 자주 보는 이들에게 경제경영서뿐만 아니라 인문학 등 다른 분야의 책도 함께 읽을 기회를 제공해 책을 쓴 저자의 깊은 속내를 함께 공감하자는 취지였지요.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경제업계의 지적 수준과 문화 마인드를 높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MBS에 10년 동안 출석하는 회원이 있을 만큼 MBS가 경영자들의 관심을 사자 조 이사장은 도서 선정에 더욱 심혈을 쏟고 있다. 20기부터 동양과 서양의 고전을 한 편씩 골라 20권의 책에 포함할 방침을 정하고, 논어와 단테의 신곡을 선정해 경영자들과 고전의 가르침에 빠져들 생각이다. 조 이사장에게 책은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인식된다. 그래서 굳이 경영 현장에서만 독서를 강조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군대 가기를 기피하는 현실을 목도하고는 지난해 한 세미나에서 “군대에 갔다오면 무엇인가 남게 해야 이미지가 달라질 것”이라며 “여가 시간이 아닌 정규 훈련과 교육시간에 병사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등 훈련체계 자체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담당인 군종처럼 사서 장교와 사서 장군 제도를 도입하는 등 체력과 지력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조 이사장은 책을 ‘잠자는 마음을 깨워주는 종’으로 여긴다. “우리는 명상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을 관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이 없는 명상은 자칫 잘못된 길로 우리의 의식을 이끌 수도 있고, 잠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책은 우리의 의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우리에게 문제의식을 갖게 해주어 명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합니다.” 그에게 책은 또 타인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가꿀 수 있는 비료이다. 책에 담겨 있는 지혜는 독자를 올바른 길로 이끌고, 지식은 우리의 삶에 올바른 내용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살찌우는 비료 중에서도 최고를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를 꼽는다. “니어링 부부의 책들은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상식을 저버린 사회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철학을 공유한 두 사람이 자연으로 들어가서 만들어내는 삶의 아름다움은 아스팔트 구조물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안이 삶의 됩니다. ” 다시 추천을 부탁하자 그가 또다시 추천하는 책은 MBS 회원들이 함께 읽은 탤런트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이다. “끊임없는 전쟁과 질병 속에서 헐벗고 굶주린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인류애를 몸소 실천하는 저자의 진지하고 치열한 삶이 아무런 수식 없이 전개돼 우리의 양심을 때린 책이지요.”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조 이사장은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좀처럼 시간을 내기 힘들다. 그런 그이기에 책을 읽는 원칙은 확고하다. 그는 읽을 책을 미리 정해서 독서하며, 책의 종류에 따라 속독과 정독을 겸하며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독서가뿐만 아니라 저자로도 이름 나 있다. ‘한국 CEO 대탐험’(CEO 뱅크)을 비롯해 ‘디자인 혁명 디자인 경영’(디자인 네트)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길’(한국경제신문사) 등 40종이 넘는 일반 단행본을 냈으며, 대학 교재를 포함해 100권 가까운 저서를 출간해 현실과 이론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글 박종현, 사진 허정호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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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7 (월) 1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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