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죽순의 싹을 돋게 하기 위해 뿌리내리는 데만 2∼5년의 시간을 보낸다. 죽순이 나온 뒤에는 하루에 50∼80cm씩 자라며 성장을 만끽한다. 솔개는 70년을 사는 조류동물이지만, 40살이 되면 부리가 부러지고 날개가 무거워져 날지 못하게 된다. 몇 년을 더 살다가 생을 마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솔개는 6개월에 걸친 갱생의 과정에 나선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산 정상 부근으로 가 부리로 바위를 쪼아 가슴까지 닿을 정도로 길게 구부러진 부리를 빠지게 한다. 이어 새로 나온 부리로 발톱과 깃털을 하나씩 차례로 뽑아내 새롭게 탄생한다. 다시 힘차게 하늘을 날아 30년 더 사는 것은 고통스러운 지난 6개월 동안의 보상치고는 큰 것이다. ‘동원F&B’의 박인구 대표이사를 만난 후 떠오른 두 단어가 대나무와 솔개였다. 최고경영자(CEO)를 인터뷰한 뒤에 떠오른 단어치고는 좀 생뚱맞다. 그러나 그는 솔개와 대나무처럼 준비해 결국 일취월장하는 기업인이다. 초급 공무원에서 시작해 교사와 외교관을 거쳐 CEO로 보여준 경영 수완이 이를 말해준다. # 준비하라, 그리고 포착하라 박 대표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8남매 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9급 공무원 생활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했다. 공무원 생활 틈틈이 당시 고교 졸업자에게도 응시 자격이 주어진 준교사 시험을 준비했다. 주경야독의 독학으로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전남 지역 관내에서 유일하게 합격한 기분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달콤함 속에서도 그는 또 다른 도약을 준비했다. 야간대학을 다니고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번에는 행정고시 준비에 몰두했다. 행정고시를 치르기 위해 여러 종류의 7급 시험에 합격했지만 현직에 나가지는 않자, 총무처 인사과장이 불러 “너 시험 선수야? 왜 시험 다 붙고도 현직에 안 나가냐?”고 물을 정도였다. 5년의 노력 끝에 31세에 합격해 현재의 산업자원부인 상공부에서 사무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열정과 학습은 그때부터였다. 중견 공무원을 지원 대상으로 한 미국 ‘험프리 재단’의 장학생으로 뽑혀 2년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그 후 미국 대사관에 사무관급 상무관으로 파견되면서 현장밀착형 근무를 자원했다. 자동차와 철강 등 주요 수출품목의 통상외교 업무를 주로 담당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백화점에 들러 미국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을 조사했다. 86년 현대의 포니 자동차가 미국에 처음 수출될 때, 미국인을 설득하려면 ‘나부터 국산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대사관 직원 100명 중 처음으로 차를 구입했다. 총 29년간의 공직 생활을 접고 기업경영자로 탈바꿈한 게 97년 3월이었다.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쳐오기 직전에 큰 처남이기도 했던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현재 한국무역협회장)의 권유로 동원정밀(현 동원시스템즈 정밀건설 사업본부)의 경영을 맡게 됐다. 만성적자에다 600%가 넘는 부채비율로 회사는 우울한 분위기였지만 과감히 부채를 줄여나갔다. 이는 외환위기가 터지자 현금 확보를 위해 아우성을 친 다른 기업의 모범이 됐다. 줄곧 공직에 있다가 50살의 나이에 기업체 CEO가 된 것치고는 잘 안착한 셈이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동원정밀을 거쳐 지금은 동원F&B를 이끌고 있다. 조금은 낯선 분야지만 그가 성공적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다방면에 걸친 관심 덕택이었다. # 체력단련은 축구, 정신단련은 독서 박 대표에게 혀끝을 만족시켜는 식품산업은 고도의 긴장과 기술이 필요한 첨단산업이다. 그는 이 논리를 축구를 통해 설명한다. “축구 경기에서 한순간의 실수가 실점으로 이어져 패배로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품산업 역시 조그만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축구에서 드러나는 예측 불가능성, 스피드의 중요성, 협력 플레이의 중요성이 경영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것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식품회사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하고 학습해야 합니다. 제가 곧잘 공을 차고 끊임없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은 이 까닭입니다.” #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CEO에게 임기라는 것은 없다. 새로운 가치와 부를 창출하지 못하면 CEO에게 임기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출돼 있는 위험을 줄이려면 평상시 부단히 ‘내공’을 쌓아둬야 한다. 박 대표는 그 내공을 학습과 독서에서 찾아왔다. 일본 미쓰비시 종합연구소의 마키노 노보루 소장이 쓴 ‘제조업은 영원하다’(청계연구소)를 비롯해 ‘한국을 버려라’(청림출판)와 ‘이런 나라에 살고 싶다’(투머로우미디어)는 뜻 깊게 읽었던 책으로 남아 있다. 특히 그 나라 제조업의 비중이 20% 이하가 되면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한다고 한 마키노 노보루의 지적은 따끔하다. 한국도 제조업 비중이 20% 이내에 들어서고 있으니 머지않아 국가경쟁력의 위기를 겪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CEO 독자로서 느낌이 남달랐던 책들도 많았다. ‘CEO가 본 CEO 히딩크’(백년글사랑)를 비롯해 ‘짐 콜린스의 경영전략’(위즈덤하우스), ‘끝없는 도전과 용기’(청림출판), ‘도요타 최강 경영’(일송미디어),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김영사)은 지금도 대표이사실 책장을 지키고 있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이는 생각하지 않는 이보다 강합니다. 그리고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당장 얻을 수 없다는 이유로 독서를 외면하는 이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따뜻한 카리스마’(랜덤하우스중앙)와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위즈덤하우스)는 직원들과 함께 읽고 감동을 나누고 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독서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세상이다. 세계 제1의 갑부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자신을 만든 것은 어머니도, 조국도 아닌 태어난 작은 마을의 한 도서관이었다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버드대학 졸업보다 책 읽는 습관이 더 소중하다고 여긴 빌 게이츠 회장은 매일 한 시간씩 책을 읽고 출장 갈 때마다 책을 꼭 챙겼다.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성공하는 사람에게 독서는 값싸게 주어지는 영속적인 쾌락”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책을 보는 이들은 참 현명하다. 1만원가량의 책값으로 거물들의 생각과 철학을 배우는 노하우를 알고 이를 실행하기 때문이다. ‘독서와 축구에 빠진 CEO’ 박인구 대표와 헤어지면서 든 단상이다.
글 박종현, 사진 김창길 기자 bali@segye.com |
2005.07.04 (월) 17:33 |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EO의 책꽂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박상환 하나투어 사장 (0) | 2007.07.24 |
---|---|
(23) 능률교육 사장 이찬승 (0) | 2007.07.24 |
(21)서울문화재단 유인촌 (0) | 2007.07.24 |
(20) 오리온 김상우 대표 (0) | 2007.07.24 |
(19)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0) | 2007.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