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뜨락

안도현씨, 7번째시집 '아무것도...' 펴내

바보처럼1 2007. 8. 5. 09:20
 
안도현씨, 7번째시집 '아무것도…' 펴내
"'자연의 마음'까지 보이는듯"

안도현(40)씨는 담백하고 원숙한 시선으로 세상을 깊이 빨아들이는 시인이다. 최근에는 자연의 마음까지 읽어버린 것 같은 따뜻한 시심이 충만한 7번째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를 펴냈다.

전북 전주 근교에 자리한 농가 뜨락에서 여름을 맞는 산수유와 살구나무, 푸성귀의 수다와 애교 속에서 번잡한 속세를 잊고 있다는 시인. "시를 20년쯤 써왔는데,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증거이긴 하지만 시집을 너무 많이 낸 것도 같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뗀다.

아이들이 입시지옥에 매몰될까봐 아내와 함께 중국에 보냈다는 안씨에게 외롭지 않냐고 물었다. "너무 외롭지 않아 큰 일입니다"라며 껄껄 웃는다.

시집을 펼치면 그 말도 그럴듯 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냥 무심코 넘겨버리기 쉬운 멧새들이 남긴 똥, 돌멩이, 삶은 감자, 피라미가 시인에게 범상치 않게 다가간다. 생명을 고스란히 간직한 모든 것이 그의 시심을 툭툭 건드리기 때문에 무료할 틈이 없다.

"감자는 속속들이 익으려고 결심했다/으깨질 때 파열음을 내지 않으려고/찜통 속에서/눈을 질끈 감고 익었다/젓가락이 찌르면 입부터 똥구멍까지/내주고, 김치가 머리에 얹히면/빨간 모자처럼 덮어쓸 줄 알게 되었다//"('삶은 감자' 중에서)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고독을 모르는 자신을 손가락질 하는 것 같다고, 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빗소리는/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소리//맛있게, 맛있게 양푼 밥을 누나들은 같이 비볐네/그때 분주히 숟가락이 그릇을 긁던 소리/빗소리//…(중략)…//빗소리 듣는 동안/연못물은 젖이 불어/이 세상 들녘을 다 먹이고도 남았다네/미루나무 같은 내 장딴지에도 그냥, 살이 올랐다네//"('빗소리 듣는 동안' 중에서 )

시인이 곳곳에 심어 놓은 아름다운 비유를 아껴 읽는다. 시집의 마지막 장과 마주칠까봐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자연을 의인화하는 수법이 돋보인다는 말에 그는 "의인화는 인간중심적인 단어에요. 그냥 인간과 자연의 입장을 바꿔 한없이 나를 낮추고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내밀한 풍경을 엿보고 싶었습니다"고 손사래를 친다. 인간에 의해 침묵당했던 자연이 인간과 같은 발언권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서정적 울림을 확보한다.

시인의 마음은 늙지 않아야 한다. 평생 소년이길 자청하는 안도현씨는 시를 통해 시인으로 살아가야 할 남은 인생을 다시 한번 다져본다.

"그래 여우라면,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어/혼을 빼고 간을 빼먹는 네가 여우라면 오너라/나는 전등을 들지 않고도 밤길을 걸어/그 허망하다는 시의 나라를 찾아가겠다/너 때문에 뜨거워져 하나도 두렵지 않겠다//"('헛것을 기다리며' 중에서) /전지현기자 capecode@sg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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