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뜨락

한잔 마시자......하종오

바보처럼1 2007. 8. 5. 13:28
 
[시의 뜨락]한잔 마시자
한 잔 마시자

하 종 오

마당에서 뒷짐지고 두충나무 본다

십수년 전 이사 와서 아내가 묘목 심었다

졸가리 몇은 지붕 넘어 앞집으로 가 있고

졸가리 몇은 담 넘어 골목으로 나가 있다

조밀한 주택 지역에서 같이 버텨온 두충나무

고갱이에 사람 같은 능력이 생겼겠다

잎 털어낸 두충나무 아래

아직 잎 달고 있는 어린 두충나무 여남은 그루

어미는 자식들 만들어내느라 힘썼고

자식들은 어미 따라 자라려고 아직 힘쓰고 있구나

십수년간 아내는, 언제 잎 따서

두충차 끓여 한 잔 마시자, 고 말만 했을 뿐

늘 아들딸 밥 챙겨 청년 처녀 되도록 먹였다

―시집 ‘지옥처럼 낯선’(랜덤하우스중앙 펴냄)에서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월에서 오월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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