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정 례
흥남 부두는 노래 속에서 내린다. 굳쎄여라 금순아 속에서, 눈보라의 아우성 속에서 엄마아, 꽝 터지는 폭탄 속에서 금순이는 치마를 펄럭이며 하늘 위를 걷는다. 머리카락을 휘날려 휙휙. 부두는 폭파되고 배는 이미 떠났는데 금순이는 두 팔을 휘젓는다. 겨울 파도 위를 걸어서 내려온다. 영도 다리 난간 위에서 고꾸라지듯 떨어지다가도 어림도 없지, 솟아오른다. 바다 갈매기들은 운다. 꽥꽥거리며 운다. 날개 달렸다고 하늘을 날면서도 운다. 명태가 가르는 찬 바다 위를 금순이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걷다가 휙 뛰어내린다. 허공을 가로질러 휙휙.
―신작시집 ‘레바논 감정’(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 ▲1955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햇빛 속에 호랑이’ ‘붉은 밭’ ▲김달진문학상, 이수문학상 수상 |
2006.05.12 (금) 1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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