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지킴이

(38)'매꾼' 박정오씨

바보처럼1 2007. 8. 8. 21:48
▶한국의 명인◀(38) '매꾼' 박정오씨
30년 매사냥 박정오씨
(진안=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전북 진안군 마령면에서 30여년째 전통 매사냥 기법을 이어오고 있는 '매꾼' 박정오(66.전북도 무형문화재 20호)씨와 그의 2년생 참매. newglass@yna.co.kr(끝)

(전주=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우훅- 우훅-"
사람이 내는 가짜 새소리인데도 잿빛 매 한마리가 날쌔게 그의 손목으로 날아든다. 쫙 편 날개로 공중을 가르는 순간 파란 하늘에 순식간에 가로획이 생겼다 사라진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에서 30여년째 전통 매사냥 기법을 이어오고 있는 '매꾼' 박정오(66.전북도 무형문화재 20호)씨와 그의 2년생 참매다.

   산등성이마다 푸른 잎이 돋아나 봄 기운이 완연한 4월초 박씨가 사냥매 훈련장으로 쓰고 있는 세칸짜리 허름한 한옥을 찾아가 그를 만났다.

   청바지 차림으로 취재진을 맞은 박씨의 손목에 몸길이 30㎝ 가량인 참매가 샛노란 눈동자를 번뜩이며 꼿꼿이 앉아있다.

   발목이 가죽끈으로 묶여있긴 하지만 사람을 공격하거나 도망가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지 않는다.

   박씨가 지난 겨울 인근 산에서 붙잡아 길들인 '냥매'다.

   "야생 매를 잡는 방식이 궁금하다"고 묻자 박씨는 대뜸 "매는 잡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며 용어부터 바로 잡는다.

   매사냥은 참매를 길들여 겨울철 꿩이나 토끼, 비둘기 등을 사냥하도록 부리는 일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 시대 만주 지방에서 시작돼 삼국, 고려시대 당시 성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예로부터 진안군 일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눈도 많이 내리는 지역이어서 겨울 철새인 매가 먹잇감을 찾으러 몰려들었다.

   한국의 '1대' 매사냥 기능보유자였던 고(故) 전영태(전북도 무형문화재 20호. 2006년 작고)씨를 포함, 전통 매꾼들이 주로 이곳에서 명맥을 이어왔다.

   진안이 고향인 박씨는 38살 당시 매사냥 장면을 보고 고(故) 김용기씨 등으로부터 전통 기법을 물려받았다.

   그는 "매가 공중에서 꿩을 채는 모습을 보는 순간 뭔지 모르게 희열감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매사냥을 하려면 그물 등을 이용해 야생 매를 생포한 뒤 사람에게 익숙해지도록 20여일 동안 팔뚝에 붙들어 매놓는다.

   박 씨는 "길들이는 기간에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매를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다"며 "이 과정이 가장 고되다"고 말했다.

   그는 아예 2평 남짓한 방에 매가 앉을 나뭇대를 세우고 며칠씩 들어앉아 매를 쓰다듬어 주거나 텔레비전을 보기도 한다.

   박 씨는 "토종 참매는 영특하고 용맹해 사냥 다니기에 좋지만 성격이 아주 예민하다"며 "한번 사람에게 놀랜 매는 결코 사람 품으로 돌아오지 않아 훌륭한 '봉받이'(매사냥에서 매를 부리는 사람)일수록 매와 친해지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고 귀띔한다.

   봉받이는 이렇게 길들인 '냥매'를 데리고 몰이꾼 5-6명과 조를 짜 산에 오른다.

   몰이꾼에 쫓긴 꿩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봉받이가 매를 띄워 꿩을 낚아채도록 한다.

   먹잇감의 숨통이 끊어진 후에야 고기를 뜯는 매의 습성상 미리 준비해간 닭고기 등으로 매를 유인한 뒤 사냥한 꿩을 빼낸다.

   맹금류인 매는 한번 노린 먹잇감을 놓치는 경우가 거의 없어 한나절 매사냥에 나서면 평균 6-7마리, 많게는 9마리의 꿩이 잡힌다고 한다.

   1년생 매를 뜻하는 '보라매'는 부지런한 대신 사냥 기술이 서툴다. 반면 2년 이상 자란 '산진이'는 노련하지만 사냥에 나서면 가끔 게으름을 피운다고 한다.

   박 씨는 그러나 "매와 봉받이가 얼마나 한 몸처럼 움직이느냐가 매사냥의 관건"이라며 "둘사이 호흡이 맞지 않을 경우 봉받이가 띄운 매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영영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30여년간 박 씨의 손을 거쳐간 매는 약 60여마리. 매는 겨울 철새인 만큼 1년에 1-2마리만 잡아 그해 겨울 사냥을 함께 한 뒤 봄이 오면 떠나보낸다.

   박 씨는 "이 때문에 매를 '잡는다'고 하지 않고 '받는다'고 하는 것 같다"며 "내게는 이제 매년 봄이 매를 떠나보내는 때로 변해버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6.25 전쟁 이후 매사냥 풍습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해 현재는 박 씨를 포함, 2명만이 매사냥 기능보유자로 지정돼 전통 기법을 계승하고 있다.

   박 씨는 1대 매사냥 무형문화재였던 고 전영태씨가 지난해 작고한 뒤 지난달 자리를 물려받았으며 농사일과 정육점 운영 등을 하면서 틈틈이 맏아들인 신은(41)씨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신은 씨는 "매사냥이 거창한 기술은 아니지만 예부터 전해오던 풍습이 사라지는 것은 막고 싶다"고 말했다.

   "봄에 매를 돌려보내면 이듬해 겨울에 다시 붙잡히는 매가 가끔 나온다"며 "매가 돌아왔는데도 정작 기다려줄 매꾼이 사라지면 얼마나 아쉽겠느냐"는 박씨를 뒤로 하고 훈련장을 나섰다.

   마당에는 겨울이 끝났음을 알리는 따스한 봄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박 씨는 "이 녀석을 돌려보낼 때인가 보다"며 손목에 앉은 참매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newglas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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