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디오를 닮는다
심 재 휘
맑은 날이면 창밖의 과실나무는
바람에 몸을 내걸 줄 안다
더는 열매를 길러낼 수 없어도
제 상처를 핥으며
오래 아파할 줄 아는 나무
그러나 나는
저 병든 나무로부터
매일 조금씩 옮겨와
라디오의 어느 거친 주파수에 서 있다
녹슨 왕관을 뒤집어쓴 채
서서히 방전되는 라디오
몸이 아프다는 것은
고장난 라디오처럼
잃어버린 몇 개의 나사와
부러진 안테나를 생각한다는 것
더불어 나의 기억은 늘 수리 중이므로
어느 날 당신을 몰라볼지 모르겠다
당신께 미리 용서를 구한다
―신작시집 ‘그늘’(랜덤하우스)에서
▲1963년 강릉 출생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
- 기사입력 2008.01.12 (토) 10:25, 최종수정 2008.01.12 (토)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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