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뜨락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바보처럼1 2008. 4. 3. 15:10
  • 첫사랑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김 남 극


    내게 첫사랑은
    밥 속에 섞인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데쳐져 한 계절 냉동실에서 묵었고
    연초록색 다 빠지고
    취나물인지 막나물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첫사랑 여자네 옆 곤드레 밥집 뒷방에 앉아
    나물 드문드문 섞인 밥에 막장을 비벼 먹으면서
    첫사랑 여자네 어머니가 사는 집 마당을 넘겨보다가

    한때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햇살도 한 평밖에 몸 닿지 못하는 참나무숲
    새끼손가락만한 연초록 대궁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까실까실한,
    속은 비어 꺾으면 툭 하는 소리가
    허튼 약속처럼 들리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종아리가 희고 실했던
    가슴이 크고 눈이 깊던 첫사랑 그 여자 얼굴을
    사발에 비벼
    목구멍에 밀어넣으면서
    허기를 쫓으면서


    ―시작시집 ‘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문학동네)에서
    ▲1968년 강원도 봉평 출생
    ▲2003년 계간 ‘유심’ 신인문학상 수상하며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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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08.01.26 (토) 09:58, 최종수정 2008.01.26 (토)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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