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뜨락

사리 하나 품으려고

바보처럼1 2008. 4. 3. 15:12
  • 사리 하나 품으려고
    ―불타는 崇禮門에 듣는다

    이혜선
    사리 하나 품어
    가르쳐야 할 사람 그리도 많아
    답답한 내 마음 들끓고 들끓어
    화마를 불러들였다

    ‘崇禮門’ 현판 높이 달고 서울 한가운데 서 있어도
    세상은
    갈수록 예의 잃어버린 사람들만 가득차

    불의 혓바닥에 육신을 내맡기고
    燒身供養하는 내모습
    불에 타서 쓰러지는 내모습
    세상 사람들아 보아라
    홍익인간의 후예들아 똑똑히 보아라

    무너져 내리는 내 몸 속에, 검게 타버린 내 심장부에
    무지개빛 영롱한
    사리 하나 찾아 보아라

    이제 이 나라에 비로소 예가 부활하리라
    두 손 모아 내게 절하는,
    나의 부활을 비는 애타는 아이들 마음속에
    안타까운 겨레 마음속에
    나는 다시 살아난다
    어짊과 의리와 예의와 지혜, 믿음이 되살아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세상을 다 비추는 사리 하나 품고
    다시금 세계에 우뚝 솟을,
    예와 덕을 숭상하는 겨레여!
    이제부터 시작이다

    불타는 나의 심장을 기억해다오.

    ▲1950년 경남 함안 출생 ▲1981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신 한마리’ ‘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 등 ▲한국자유문학상 신인상(1989), 한국현대시인상(2007) 수상 ▲한국 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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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08.02.16 (토) 12:10, 최종수정 2008.02.16 (토)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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