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탈북화가 선무 선을 넘다, 선이 없다 | ||||||
2008 03/25 뉴스메이커 767호 | ||||||
나는 요즘 들어서 도대체 예술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라고 머리 쓰며 고민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명언을 남겨놓았다. 그 유명한 백남준 선생은 예술은 사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대학원 수업을 듣는데 강의하는 선생님은 예술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하신다. 예술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예술이 사기라고 말한 백남준 선생의 깊은 내용을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으리오만은 조금은 알 것 같다. 또 예술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다가온다. 쓸모가 있다면 그것은 상품이요 예술이 아니라고 한다. - 선무 ‘새싹이 움틀 때에’ 중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적 상황이 늘 작가들에겐 어처구니없게도 작업을 괴롭게 만들지요. 그러나 작업을 하는 예술가에게뿐 아니라 동시대의 누구에게나 그러한 부조리한 상황은 발생하고 말지요, 그것과 순응하여 살아가든가 그 부조리함에 저항하든가, 우리는 선택에 놓이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부조리함을 발견하고 폭로하는 것이 어쩌면 작가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선무_벗다’라는 작품에선 사회주의적 옷을 벗고 나체의 자유를 선택하는 당당한 여인상이 표현되어 있는데요, 작가님의 경험에서 느낀 인상이겠지요.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에선 여성의 나체가 가장 강력한 상품이며, 동시에 가장 나약한 피지배층에 속하는 것이 또한 여성상의 모순입니다. 그래서 자본의 시장에선 나체의 여성을 접대용품(너무나 비인간적인)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화폭에 담겨진 여성상은 자유롭다기보다는 어느 상업 포르노 작가의 카메라 앵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듯한 어색함이 강하게 보입니다. 생존을 위해 벗겨져야 하는 여성의 약함을 의도하셨다면 오히려 통렬한 작업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작품의 제목이 ‘벗다’가 아닌 ‘선무_입다’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현상은 벗겨졌으나 또 다른 권력체제의 사회에서 한 개인은 그 체제의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 김진수 ‘새싹이 움틀 때에를 읽고서’ 중에서
‘북한의 일상’ 시리즈를 그린 선무(線無, ‘선이 없다’는 뜻의 예명·37)는 북에서 ‘탈출’하여 남에 정착한 작가다. 북의 한 지방대학에서 조선화를 공부하던 그는 2002년, 중국을 거쳐 남으로 왔다. 생활고와 체제에 대한 염증 때문이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탈북하기까지 과정은 다른 탈북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3년,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2007년 ‘우린 행복합니다!(노순택·선무 2인전)’를 시작으로 ‘푸른 대안-청춘의 개화’ ‘달콤 쌀벌한 대선’, 2008년 ‘mind+body전’ ‘서교60’ 등에 출품했다. 그는 탈북자 가운데 전시를 통해 화단에 데뷔한 첫 번째 작가다. 그가 첫 전시회를 열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인가 학과 교수의 소개로 전시기획자를 만났다. 그 전시기획자는 그가 가지고 온 포토폴리오를 보고 이것저것 고르더니 시간이 없으니 빨리 작품을 가져오라고 했다. 전시라고 하면 기획자가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돌아보고 마음에 들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그로서는 조금 ‘미타’한 생각이 들었지만, 교수의 소개인지라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정작 전시회를 하루 앞두고 작품을 가지고 갔다가 불쾌한 일을 겪고 말았다. 길이 어두운 그로서는 미리 서둘러 출발한 까닭에 약속보다 먼저 전시장에 도착했다. 어느 곳이 전시장이고 아닌지를 몰라서 한참 헤매다 기획자와 전화통화를 여러 번 하였다. 하지만 기획자는 전시장에 없었고, 전화로 ‘작품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물으니 ‘왜 이리 빨리 도착했느냐’고만 다그치는 것이 아닌가. 밸이 곤두섰다. 순간 ‘내가 첫 전시를 이런 식으로 하여야만 하나’ 하는 생각과, 이런 기획자를 믿고 나의 첫 전시를 한다는 것이 마깝지 않았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나 이 전시 하지 않으련다. 이만 전화 끊자”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버렸고, 다시 작품을 가지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그와 첫 번째 전시회를 같이한 노순택(38)은 소위 ‘운동권 사진작가’였다. 매향리, 대추리 등 미군기지 반대투쟁에 동참하기도 했던 그는 평양을 방문하여 찍은 사진들을 전시회에 내놓았다. 한 사람은 그림으로, 한 사람은 사진으로 같은 북한의 풍경을 담았지만 그 이념적 배경과 지향은 정반대였다. 다만 ‘선과 색, 빛과 형태로 북한의 이미지를 투시하려는 시도’(전시기획자 김동일)만은 같았다. 부암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기간 동안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때에 걸맞지 않게 경찰이 출근하다시피 했다. 전시장 쇼윈도에 내걸린 김정일의 초상화(‘조선의 신’) 때문이었다. 정작 그 초상화는 배경의 인공기를 뒤집어 그린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작품이었음에도. ‘달콤 쌀벌한 대선’은 두 가지 상반되는 인상을 담고 있었다. 남에 와서 두 번 겪은 대선은 신기롭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그에게는 선거와 관련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다. 북에서의 투표는 절대적 의무다.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돌아오는 책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그가 중국에서 ‘비락질’을 하다 남으로 가기로 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북으로 돌아갈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다 그만 정해진 투표일을 넘겨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그림 속에 남한 각 정당의 깃발과 함께 북한 노동당의 깃발을 그려 넣고, 그 아래 어미 파랑새가 녹슨 철조망 위에 앉아 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왜 ‘달콤 쌀벌한 대선’일까. 이겼으니까 ‘달콤’하고, 이기려 하니까 ‘쌀벌’한 것이란다. 그는 남으로 온 후 한동안 잠이 들면 북한 배경의 꿈만 꾸었다. 두고 온 부모형제는 주요 출연진이었다. 처음 남한은 그에게 낯설고 이상한 나라였다. 그가 본 ‘서울의 청춘’들은 요상한 음악에 흐느적거리고, 젊은 처자들조차 아무 데서나 ‘담배질’을 해대는 제정신이 아닌 모습들이었다. 그에게는 그토록 간절한 통일에도 도무지 무관심한 듯했다. 과거사는 그냥 과거사이고, 친일이 행세하고 항일이 홀대받는 한심한 현실 앞에서도 그 누구도 죄인이 아닌 듯도 했다. 예술은 개인에 갇혀 있었고 세상은 돈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는 기억을 비판했지만 때론 기억 때문에 괴로웠다. 그는 여직 기억에 기대고 있다. 그는 작년에 첫아이를 보았다. 딸이었다. 조선족 아내는 중국에서 처음 만났다. 혼자 남으로 온 후 자꾸만 눈에 밟혀서 재학 중 한국에 데려와 결혼했다. 중국에서 피부관리 일을 하던 아내는 여기서도 같은 일을 하며 살림을 꾸려나간다. 10개월밖에 안 된 딸아이를 남에게 맡겨놓고 일을 다녀야 하는 게 안쓰럽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는 어차피 그림밖에 모르니 그림만 그릴 것이고, 어쩌면 아내의 고생은 이미 정해진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내는 요즘 마냥 행복하고 마냥 좋다고 한다. 그는 오는 5월 28일부터 6월 27일까지 대안공간 충정각에서 첫 개인전 ‘우린 행복합니다!’를 열고, 9월 24일부터 10월 12일까지는 쌈지길 갤러리에서 ‘세상 부러움 없어라’를 연다. 여전히 북에서의 기억들을 담아내는 작업이다. 아직까지는 그 기억들이 과거가 아니라 역사이며 눈물이며 ‘억압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자신의 존재의 이유이자 소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선을 넘었으니 이제 선이 없다. 언젠가 북의 기억과 그 존재의 의미가 소멸할 때 이윽고 남의 현실에도 시선을 돌리게 되리라. 그때 비로소 그는 진짜 선이 없는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일까. 조심스럽게 예술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는 적어도 예술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의식을 조금은 늦게, 혹은 빠르게, 또는 상상 속에서 헤매게,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 미래의 암시 같은 일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본다. 그것이 내가 여기 남조선에 와서 느낀 예술이다. 글·사진 유성문<편집위원> rotack@lyco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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