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솟대문학’70호 발간 앞둔 방송작가 방귀희 | |||||||||
2008 04/22 뉴스메이커 771호 | |||||||||
내일은 푸른 하늘 다시 태어난다면 마냥 달리고 싶다. 두 다리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만끽하고 싶다. 두 다리로 내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고 싶다. 보고 싶으면 만나러 가고, 무서우면 도망치고, 싫으면 뒤돌아 나오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안고 싶다. 두 팔을 힘껏 뻗으며 기지개를 켜고 싶고, 두 손으로 과일을 깎아보고 싶고, 두 팔로 사랑하는 사람을 꼭 안아보고 싶다. - 방귀희 ‘세상을 바꾸고 싶다’ 중에서
얼마 전 방송작가 방귀희(50)는 작은 소동을 겪었다. 26년간 방송 일에만 매달려온 그녀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에 도전했다. 무슨 정치욕이나 공명심 때문이 아니었다. 스스로 1급 중증장애인이면서 대표적인 장애인 전문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해온 탓에 나름대로 장애인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성을 충분히 지녔다는 주위의 추천도 있었지만, 생각해오던 장애인복지 선진화를 위해서는 직접 입법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 실제로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기간 동안 한 후보 측에서 정치 참여에 대한 권유가 있기도 했다. 방귀희는 도전정신이 강합니다. 그래서 지금 정치에 도전합니다. 방귀희는 창의적입니다. 그래서 정치에도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귀희는 리더십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우리 사회를 이끌어왔습니다. 방귀희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최고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방귀희는 꿈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력과 대중적 호응을 바탕으로 한 정치를 통해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녀는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출마의 변을 밝혔고, 몇몇 언론에서는 여성 장애인 비례대표 몫으로 그녀를 1순위 물망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녀는 국회의원이 된다면 거리로 나선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재가장애인들의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장애인정책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탁상에서 이루어지는 시혜적 정책이 아니라 모든 장애인이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보장정책을 펴고도 싶었다. 그래서 힘 있는 여당을 택하기는 했지만, 정파적 입장을 떠나 500만 장애인의 진정한 대변인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꿈은 정치 현실이라는 장애 앞에서 끝내 ‘들러리’로 만족해야만 했다. 총선이 여당의 ‘턱걸이 과반’으로 끝이 난 다음날, 그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서둘러 방송국을 향했다. 전날 하루 종일 내리던 짓궂은 비도 그친지라 여의도로 가는 길은 맑고 푸르기만 했다. 간밤의 비에도 벚꽃은 아직 지지 않았고,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는 목련꽃들도 그 큼직한 꽃송이들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KBS 제3라디오 ‘내일은 푸른 하늘’-. 그녀가 27년째 집필을 맡아오고 있는 장애인 대상 프로그램이다. 그녀는 1981년 동국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마침 그 해가 ‘세계 장애인의 해’였던지라 그녀의 사례는 크게 화제가 되었고, 덕분에 방송에 출연까지 했다. 라디오 방송이라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기에 방송작가는 이렇게 대본을 썼다. “다리도 못 쓰십니다. 팔도 못 쓰십니다.” 그런데 MC가 애드리브로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머리는 어떠십니까?” MC는 다리도 팔도 마비돼 사용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을 본 순간 갑자기 지능지수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 질문에 “저는 오늘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해서 초대된 것으로 아는데요, 지능이 모자란 학생이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는 대학이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방송을 해오면서 애환도 많았다. 이 프로그램 때문에 삶의 태도를 송두리째 바꾼 사람도 있었고, 오랜 비관의 늪에서 빠져나왔다는 장애인도 있었다. 한 번은 ‘나도 사랑을 하고 싶다’는 방송을 듣고 한 비장애인 남성이 왜소증을 앓고 있는 여성 장애인에게 청혼, 결혼까지 이르렀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끝내 결혼생활 도중 간암으로 쓰러졌다는 부고를 받았던 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슬픈 기억이다. 그녀는 2006년, ‘25년간 한결같이 세상의 소외된 사람들의 등불이 되어주는 역할에서 라디오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한국방송작가상을 받았다. 최근 그녀에겐 한 가지 역할이 더 생겼다. 대전에 있는 우송대학교에서 겸임교수 직책으로 1주일에 한 차례씩 ‘장애인 복지론’를 강의하는 일이다. 이미 경희대학교에서 ‘구성작가 실기’로 출강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전공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현장에서의 경험만으로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장애인 복지를 강의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두려움이 앞서는 일이기도 했다. 더구나 그녀에게는 대학원 시절의 아픈 기억이 남아 있었다. 곱추병 장애를 가진 교수님이 새로 부임해 오셨는데, 첫 강의시간에 그를 본 학생들이 놀라 강의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심지어 남학생 중 일부는 욕을 해대기까지 했다. 수강학생이 5명을 넘지 않으면 그 강의는 자동 폐강될 처지였으므로 그녀가 오히려 안타까움에 동료 학생의 손을 있는 힘껏 붙잡고 안절부절못했지 않았던가.
그녀의 활동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장애인 문학지 ‘솟대문학’의 발간이다. 글을 쓰는 장애인들을 위해 희망의 솟대를 세운 지 벌써 17년이 되었다. ‘솟대문학’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구차한 일들을 겪기도 했지만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스스로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솟대문학’ 덕분에 좋은 분을 많이 만날 수도 있었다. 그 중 특히 고인이 되신 시인 구상 선생님을 만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1990년 12월에 한국장애인문인협회를 창립하여 사회적으로 덕망 있는 몇몇 문인을 모시기 위해 전화를 드렸더니 모두 냉정하게 거절했다. 내가 글을 통해 그분들을 상상했을 때는 한없이 따뜻한 분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얼음처럼 차가운 것을 보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글과 사람이 다르다는 실망감 속에서 구상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내가 그날 약속이 있어서 시간에 맞춰 갈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꼭 참석할 거예요.” 나는 전화를 끊으며 “못 가요. 시간 없어요”라고 칼처럼 말하던 사람들과 달리 참 부드럽게 거절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립대회에 구상 선생님이 오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갈 무렵 중절모자를 쓰신 노신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구상 선생님이었다.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인연이 14년 동안 이어졌다.
지금은 한 외식 기업가의 도움으로 어렵게 꾸려나가고 있는 ‘솟대문학’은 계간으로 1000부를 발행한다. 비록 서점에서는 한두 권 정도밖에 팔리지 않는 실정이지만, 이 책이 장애문우들에게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실로(?) 엄청나다. 그들은 이 책을 통해 시인도 되고 소설가도 된다. 시 편당 1만 원, 소설 매당 3000원이라는 고료로 주변 사람들에게 기분 좋게 한턱 쏘기도 한다. 잘하면 ‘솟대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안을 수 있다. 또 모른다. ‘인형의 집’이 여성 해방을 불러왔고, ‘엉클 톰스 캐빈’이 노예 해방을 이끌었던 것처럼 ‘솟대문학’이 장애인 해방의 전기를 이룰지도. 방귀희는 돌떡을 받아놓고 찾아든 소아마비 때문에 사지를 못 쓰는 1급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도 40%의 기능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무학여고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장애인으로서 겪은 설움과 고통이야 새삼 이를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껏 걸을 수 없는 발로 세상을 걸어왔고, 안을 수 없는 팔로 세상을 안아왔다. 그녀 스스로 글 쓰고 말하는 재주조차 장애가 준 선물쯤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녀의 속내 깊이 자리한 장애에 대한 원망마저 어찌 다 가릴 수 있으랴. 그녀는 장애가 없었다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을 거라 했다. 만약 그녀가 정말 비장애의 평범한 삶을 살았더라면, 그때 장애인을 보는 그녀의 시각은 과연 어떠했을까. <글·사진 유성문 편집위원 rotack@lyco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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