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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1촌 운동-스타농민> 농민운동가의 대변신 농산물 ‘명품화’ 성공 |
⑤ 미니채소로 고수익 ‘건강나라농원’ 한경희 대표 |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 |
집에서 자는 날보다 거리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더 많았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터전은 내팽개친 채 서울 여의도, 서울역에서 분노한 농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구호를 외치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6년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 2003년의 일이었다. 한경희(44) 건강나라농원 대표는 이제 ‘벤처 농업인’으로 불린다. 지난 20일 경기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건강나라농원에서 만난 한 대표는 “농민운동은 유능한 후배들에게 맡기고 이제 농민들을 먹여 살리는 게 내 일이 됐다”며 껄껄 웃었다. “6년동안 농민운동을 해 봤지만 변화시키기 힘들더군요. 아무리 소리쳐봐도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 겁니다. 이제 젊은 후배들도 많아졌고 저는 현장에서 농업을 책임져야겠다고 판단한 거죠.” 귀향한 그가 처음 눈을 돌린 것은 농업의 ‘명품(名品)화’였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했던 그는 지난 1993년 네덜란드 농업 연수때 보았던 유리 온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미니채소(어린 채소)와 새싹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농업을 공부한 사람인데 남들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농민들과 경쟁해봐야 서로 피해를 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에는 생산한 미니채소를 트럭에 싣고 서울 특급호텔을 돌며 일일이 설득하기 시작했다. 발로 뛰며 판로 개척에 나선 지 2년만에 그가 생산한 미니채소와 새싹, 장식용 채소들은 명품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성공 가능성을 예감한 한 대표는 함께 일할 농민들을 찾아 나섰다. 농민운동을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최소한 10농가는 먹여 살리겠다고 다짐했던 그였다. 다시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곁에는 18농가가 든든한 지원군처럼 함께하고 있다. “일종의 소사장제예요. 제 이름을 걸고 재배한 미니채소를 팔아주는 거죠. 우리는 늘 주문량의 120%를 생산해 예비량을 남겨둡니다. 최고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고 협력 농가의 상품을 우선적으로 판매할 수 있으니까요.” 올해 매출을 묻는 질문에 한 대표는 너털웃음으로 대신했다. “몇몇 언론에 인터뷰하면서 예상 매출을 얘기했더니 엄청난 부자인 줄 알아요. 월 2억원 이상은 매출을 올릴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해 나갈 겁니다.” 그는 21일부터 7박8일간 미국, 캐나다 농업 견학에 나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에 우리 농업을 방어하고, 나아가서는 해외 시장도 개척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이 왜 우리 농업시장을 탐냅니까. 그만큼 매력 있는 시장이라는 것 아닙니까. 좋은 시장을 우리가 갖고 있는데 뺏기지 말아야죠. 선점하고 있는 건 우리입니다.” 한 대표는 “지금까지의 농업이 생산자 위주였다면 이제 소비자 맞춤 농업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미국 시장이 원하는 상품을 생산하면 우리도 미국에 농산물을 수출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광주(경기) =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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