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먹는 산
천수호
눈뜨면 맞먹는 산이 있다
10층에 사는 나와 맞먹는 산
그 산은 내 동쪽에 있다
아침 햇살이 산 능선을 올라설 때
제 속을 다 잠재워 팽팽해지는 산
내가 바깥보다 어두워질 때
나무며 돌을 재채기처럼 튕겨 내어
캄캄, 얼굴 붉히는 산
같이 어두워지거나 같이 밝아지는 것은
맞먹는 게 아닌 것,
내가 불 밝힌 밤이면
조용히 방석을 바꿔가면서
나와 면벽하는 산
한 번도 오른 적 없어, 겁 없이 맞먹는 산
-신작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민음사)에서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명지대 박사과정 수료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