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외출하고 하루종일 전화통 앞에 붙어 앉아 가족들한테 걸려오는 전화를 외출한 가족들 대신 받아주다 보면 자꾸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밤에 비가 조금 온다 비가 오고 잠도 안 오는 날 기분도 그런데 어디가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친구나 내가 아는 사람 중 누구를 하나 불러내려고 아는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뒤적이다 보면 내가 지금껏 헛살았고 앞으로도 나는 계속 헛살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나의 목을 조른다
―신작시집 ‘정훈소 시집’(뿌리)에서 ▲1963년 충남 서산 출생 ▲1996년 계간 ‘뿌리’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