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금을 켜는 늙은 악사
김 수 영
그의 손가락이 현 위에서 춤을 추자
한때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던
주름진 미간이 떨린다
두 줄 현 위에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죄었다 풀며 현 위를 구르는 소리가
그를 이 세상 밖으로 밀어낸 건 아닌지
그가 빠졌던 숱한 구렁
그 굽이에서 건져올리는 저 질긴 소리
굿판에 서지 않으면 온몸이 시름인
저 늙은 년의 굿에는 마른천둥이라도 불러야지
숨가쁜 북장단에 무당은
시퍼런 양날 작두 위에 서고
그는 한치 제겨디딜 데 없는
두 줄 현 위에 서서 먼 곳을 본다
―창비시선 300기념시선집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에서
▲1967년 경남 마산 출생
▲199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오랜 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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