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싶은 곳

[스크랩] 해남 윤씨 고택 `녹우당` - 고풍스런 멋과 향이 그윽한 곳

바보처럼1 2006. 4. 22. 23:22
해남 윤씨 고택 '녹우당' - 고풍스런 멋과 향이 그윽한 곳
 
 
고산박물관에서 나오면 은행나무 옆으로 녹우당 솟을대문이 보입니다.  담장은 돌로 쌓은 맞담인데 기와를 이어 마감을 했고 긴 담장과 또 다른 담장을 이룬듯한 안통에 솟을대문이 있는것입니다. 담장을 이용하여 약간 움푹 들어가게 만들어 마치 옹성의 문같은 분위기 입니다.  이러한 형태는 이곳이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여서 그렇게 만든것이 아닐까 합니다.
 

 

녹우당 정문
 
 
녹우당은 본래 아흔 아홉 칸이던 것이 별채가 불에 타 없어지고 지금은 55칸만 남아 있습니다. 현재 이 집에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헛간, 안사당, 어초은 사당, 고산사당, 추원사 등이 남아있습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이 사랑채 입니다.  이 사랑채는 효종(孝宗)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하사한 경기도 수원집을 현종 9년에 해상운송을 통해 이전하여 그대로 다시 세운 건물입니다.
이 사랑채는 참 독특합니다. 일단 녹우당은 안채와 사랑채 전부 서향하고 있습니다.  가본적은 없으나 안동 하회마을에 서애 유성룡 고택이 서향하고 있다고 하는데 왜 서향으로 만들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서향이기때문에 해가 늦게까지 건물 깊숙히 들어올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채 건물 앞쪽에 처마에 잇데어 부설한 시설이 있는데 이런것을 <차양>이라 부르는게 맞는지 <사랑(斜廊)>이라 하는게 맞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녹우당 사랑
 
 
 
사랑채의 기둥은 둥글고 자연석 초석위에 세웠는데 그렝이를 잘 하였습니다. 또 도리는 둥글지 않고 모를 깍은 팔각형입니다.
사랑채에 걸려 있는 편액을 보니 이곳이 <녹우당>이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이 글씨는 윤두서의 친구이자 윤두서와 함께 동국진체를 완성시킨 옥동 이서가 쓴 글씨입니다.  이서는 실학자로 유명한 성호 이익의 형입니다.  
 
공재 윤두서가 여주 이씨인 이하진과 그의 아들들인 이익의 4 형제들과의 교우는 상당히 의미있는 부분입니다. 그중 공재보다 8살 위인 이익의 둘째형 이잠과 6살 위인 셋째형인 이서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윤두서와 함께 동국진체를 완성한 당대 명필 옥동 이서가 쓴 '녹우당'편액
 
 
사랑채 앞 은행나무에서 노란 잎이 마치 빗소리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하여 녹우당이라는 堂號를 짓고 현판을 달았다고 합니다. 
 
 
이잠(1660~1706)은 약관에 과거에 급진했지만 부친 이하진은 너무 어려 관직에 오르는것을 불행이라 생각하여 회시에 나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는 이잠의 강직하고 강개한 성품을 지닌 아들을 잘 알기 때문이였습니다. 그 뜻을 받들어 이잠은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에 매진했으나 1706년 왕세자를 적대하는 김춘택등을 제거해야 한다는 강력한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 매맞아 죽습니다. 그의 상소는 매우 격렬했으며 18차에 걸친 모진 고문을 받고도 끝내 굽히지 않고 죽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이서, 이익도 벼슬을 포기했습니다. 이잠의 죽음은 공재 윤두서에게 크나큰 슬픔이였을것입니다.  
 
옥동 이서(1662~1723)와는 둘도 없는 지기였습니다. 이서는 공맹의 도를 실천하려고 한 매우 온건하고 유연한 인물이였습니다. 평생 벼슬길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했는데 제자만 수백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공재는 아들들을 이서밑에서 수학케했으며 이서 아들들 역시 공재에게 보내 수학하게 했습니다.
 
 이서 집안은 대대로 명필을 배출했습니다. 이서는 왕희지체를 전범으로 해서 동국진체를 창안해 서예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일명 옥동체라 불리는 동국진체는 조선 초,중기의 서예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에서 출발해 '고전과 고대로 복귀'를 주장한것으로서 후기 서예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서가 동국진체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거의 윤두서와 머리를 맞대고 같이 연구했다는 점입니다. 
 
옥동 이서와 어떤 사이였는지는 공재가 죽은 후 이서의 제문을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명문이기에 비록 부분이지만 인용하겠습니다. 친구와는 어떤 마음으로 사귀어야 하는지 좋은 교훈이 될것입니다.
 
[ 공이 태어날 때 나는 여섯 살이었다. 나는 약관때부터 공과 함게 있기를 좋아하고 추종해 강마하기를 40여 년이 되었다. 공은 나의 마음을 믿고 나는 공의 도량을 좇았다. 내가 그것을 아교와 칠이라 말하면 군은 금란이라 일컬었고, 내가 관포라 하면 군은 범장이라 했다. 마음이 서로 거스르지 않앗으나 구차하게 합하지도 않았다. 한 마을에서 같이 늙어가기를 기대했더니 뜻하지 않게 가난으로 인해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오호라, 하늘이 나를 돕지 않는구나. 어찌 나의 분신을 빼앗아 가는가. 어찌 나의 몸 반쪽을 잘라 내는가. 오호라 , 이제 다시는 마음을 합할 친구가 없으며, 다시는 마음의 깊은 얘기를 털어놓으수가 없으니, 쓸쓸해서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외롭고 갈팡지팡하도다 ]
 
 
안채는 사랑채까지 포함하면 'ㅁ' 형태의 구조인데 사랑채가 한단 낮게 배치되 있고 조금 떨어져 있어 엄밀한 의미의 'ㅁ' 은 아닙니다. 이는 남도의 개방성이 도입된 성정을 표현했다고 봐도 무방할것 같습니다. 마당 안에는 조그만 연못도 있습니다.
 
 

 

녹우당안채
 
 
안채 대청에는 현종이 윤선도의 뜻을 기려 사후에 이조판서로 추증하면서 충헌이란 시호를 내린것을 기념한 <충헌세가>의 편액이 자랑스럽게걸려 있습니다.
 
 

 

충헌세가편액
 
 
대청에서 올라다보이는 천장은 서까래가 다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의 양식이고 서까래가 비대칭인 반오량 구조입니다. 서까래가 짧은쪽이 툇마루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 집 잔명이 대칭적이지 않다는 의미인데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눈썹지붕을 <보첨>처럼 설치하여 균형을 잡고 비가 들이치는 일에 방비하였습니다.
 

 

 마치 눈썹을 붙여놓은것 같아서 이름붙여진 눈썹지붕
지붕위에 튀어나온 부분은 환기구인데 조선조에만 볼수 있는 구조물입니다
 
 
 

 

아궁이 위쪽에 방의 벽면보다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건축용어로 <고미 벽장> 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붙박이 장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놓여져 있는 솥뚜껑을 열면 맛있는 밥이 지어져 있을것 같습니다.
 
 
후원으로는 여러 나무, 특히 해남 윤씨 가문의 대쪽같은 상징을 보여주듯 대나무가 심어져 있어 담장과 함께 고풍스런 멋을 풍기고 있습니다.
 
 

 

녹우당 후원
 
 
담장을 따라 올라가면 고산사당과 어초은 사당이 있고  조금 윗쪽에  어초은 내외 가묘가 나오며 그곳에서  북쪽으로 길을 따라가면 조그마한 개울이 있고 다리건너 숲을 지나면 제법 커다란 건물이 하나 나오는데 제각인 <추원사>입니다.  제각에는 혼백을 모시는 신여라든가, 제물을 담아 운반하는 기구를 보관하다던가 하는 제사에 관련된 일을 하던 곳입니다. 
 
 

 

추원사
 
 
 
본채는 팔작지붕인데 일반 사가에서 합각벽에 쇠장식을 하는 예가 없는데 잎 사이로 꽃이 돋아난 형태의 쇠장식을 붙여놓았고 특히 사랑의 존재가 아주 특이합니다.
 

 

사랑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두껍지 않아 본채의 비중을 낮추지 않는다
 
 
추원사를 끝으로 녹우당을 나와 천천히 마을 입구까지 걸어 나왔습니다.  마을입구에서 덕음산쪽을 바라보며 녹우당과 다시 만날 약속을 마음속으로 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녹우당'   고산 유선도의 문자향이 향기롭게 퍼져있고 공재 윤두서의 그림이 펼쳐져 있는곳. 이후 소치 허련이 공부했고 정약용의 실학사상이 꽃피우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던 곳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그렇게 녹녹치 않았습니다.  당쟁으로 귀향가고, 관직이 좌절되었으며, 심지어 죽음까지 맞았던 선비들의 아픔이 있는곳입니다. 
그러나 그런 험악한 세상 또한 자기 책임으로 생각하며 부단히 자기 혁신과 새로운 학문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했던 실학의 선각자들이 살았고, 길러낸 곳이도 합니다.   그곳 사람들이 겪었던 아픔을 생각하면 뭐라 표현하기 힘든 처연함이 있는곳입니다. 그분들의 정신과 마음들이 녹우당 앞 나이 500년의 은행나무 처럼 오랫동안 우리들과 함께 하길 바라며 녹우당과 작별했습니다.
 

 

마을앞 코스모스
 
 
 
2005 . 12 . 3
 
 
 
금강안金剛眼
출처 : 우회전금지
글쓴이 : 금강안金剛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