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를 다녀왔습니다.
올 봄에 팔만대장경을 실제 제작했던 유적지인 강화도 선원사지를 다녀온 후로는 폐사지는 참 오랜만입니다.
저는 언제나 페사지에만 가면 가슴이 싸~합니다. 대부분 모든 건물은 사라지고 넓은 초지에 덩그러니 탑이나 부도비만 서있는 모습을 보면 크고 화려했던 옛 영화가 한낮 꿈 같아서이기도 하지만 그 절을 창건하고 중창해던 선사들의 가르침을 올바로 계승하지 못해서이지 않은가 하는 후대로서의 죄송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길을 보령으로 잡은 이유도 사실 성주사지 때문이였습니다.
성주사는 신라 말기 구산선문 중 하나로 이름 높았던 곳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주사는 백제 법왕에 의해 오합사(烏合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습니다. 법왕이 왕자일때 삼국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위령하는 뜻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백제가 멸망하자 흰말이 사찰에 와서 울며 불우(佛宇)를 돌다가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호국도량입니다. 성주사로 개명된것은 통일신라 말이고 성인이 거하는 절이라는 뜻인데, 성인은 신라 말기의 명무염국사를 말합니다.
도의 선사의 가지산파가 양양의 진전사라면 성주문파가 보령 성주사인것입니다. 그만큼 대사찰입니다. 무염국사가 성주사의 주지로 있을 당시 성주사는 불전 80칸, 수각 7칸, 고사 50여 칸 등 천여 칸에 이르는 큰 규모였다고 합니다. 이때 성주사에서 정진하는 수도승만 2,000여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옛 영화는 구름속의 성주산처럼 가물거리고 탑들만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성주사지는 국보 1점과 보물 3점, 유형문화재 2점등 문화유산으로도 귀중한 장소입니다.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8호) 입니다.
낭혜는 무염국사의 시호이며, 신라 태종 무열왕의 8대손으로 13살 어린 나이에 출가했습니다. 낭혜는 21세에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 그곳에서 선종을 익혔고 귀국하여 성주사의 주지가 되어 신라의 선종을 크게 융성시킨 낭혜는 88세의 나이로 입적하였으며, 진성여왕이 낭혜를 기리기 위해 시호와 함께 부도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부도비는 화려한 귀부와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 선생이 글을 짓고 그의 조카 최인연이 글씨를 쓴 5천자의 비문, 전해오는 신라의 부도비 중에서 가장 큰 규모등으로 신라 부도비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성주사지에는 모두 4개의 탑이 있는데 맨 먼저 앞에 있는 것이 5층 석탑이고 그 뒤로 3개의 탑이 나란히 서있습니다. 모든 탑은 평평한 모양에서 그 끝이 위로 날렵하게 올라가는 모양이 백제 양식인 것 같은데 관광공사 안내사이트에서는 통일 신라 하대 양식이라고 적혀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보물 19호 성주사지 5층석탑
제가 정말 성주사지를 가보고자 했던 이유는 국보나 보물이 아니라 조그마한 이 석불 때문이였습니다.
훼손된 부분이 시멘트로 대충 땜질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제가 알고 있는 부처의 얼굴이 아니였기에 아무리 봐도 석불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으며 어떤 의미의 조각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조성 시기는 백제나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고 발굴조사 결과 다른 곳에서 이전해 온 것이라고 합니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생노병사, 윤회의 깊은 진리를 깨달아 우주 만물의 이치를 몸으로 관통하신 성스러운 존재 아닙니까? 그래서 부처의 얼굴은 언제나 고귀하고 깨달은 자의 자애로운 표정이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저는 한번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얼굴의 불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불상이 아니라 민간신앙의 주술적 모양으로 생각했습니다.
직접 가까이에서 천천히 살펴보니 불상이란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머리의 모양과 양어깨를 두른 법의, 가사의 주름과 옷고름이 확연하고 무엇보다도 왼손을 위로하여 배를 감싸고 있는 모습, 전형적인 백제 불상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것이 불상임을 부인할수 없는점은 아이러니 하게도 얼굴입니다.
이 불상의 얼굴을 한번 보십시요.
오른쪽쪽 귀는 없고, 코는 긁어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 때문에 마모되어 시멘트로 때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소발의 머리모양, 누덕누덕 기워진 얼굴에도 천진난만한 표정. 우는듯, 웃는듯한 묘한 표정. 훼손이 심하고 시멘트로 덧칠을 해서 원래의 표정을 알기가 힘드나 마치 정성을 빌고 있는 불제자들에 대해 ' 왜 나한테 비는것이냐? 세상에 대해 내가 아는게 있냐 '는 식의 표정입니다. 조금은 어의 없어 하는 표정이 정확한 표현 입니다.
불교 선종의 핵심은 스스로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자심즉불(自心卽佛)의 사상입니다.
다시말해 해탈의 길은 누구에게 빌어서, 물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달마가 9년간에 면벽수련을 통한 깨달음을 얻었듯이 결국 자신의 문제이고 그 자신의 각성을 통해 온 세상의 빛을 밝혀주는 우주의 문제와 통일된다는 사상입니다.
저 불상의 얼굴은 코를 긁어 먹으면 아들을 낳을수 있다는 전설처럼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중생에게 나누어준 모습뿐 아니라 ‘ 모든 문제는 네 안에 있으므로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나는 다만 네가 진정으로 견성하길 빌어줄 뿐' 이라는 가르침. 오욕칠정의 바다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애처로움과 연민, 진정한 자비로움의 표정.
이것이 자심즉불(自心卽佛)의 진정한 가르침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 불상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가 진짜라고 알고 있는것중 정말 진짜가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외양만 가지고 판단하거나, 엄숙하고 뭐든지 다 안다고 하는 사람들만 추종했던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 진짜라는 건 네가 어떻게 생겼는가에 달려 있는 게 아니야.
그건 너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 말하는 거란다. 어떤 아이가 너를 오래오래 사랑해주면, 그냥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너를 사랑하면, 그러면 넌 진짜가 되는 거야 ”
마저리 윌리암스의 동화 [사랑받는 날에는] 中에서
성주사지 석불입상은 우리 스스로가 진짜가 되기위해서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없이 들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진짜가 되길 바라며...
2005. 0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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