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풀............남궁 벽

바보처럼1 2006. 4. 30. 22:38

<풀>

 

풀, 여름 풀

요요끼(代代木)들의

이슬에 젖은 너를

지금 내가 맨발로 삽붓삽붓 밟는다.

여인의 입술에 입맞추는 마음으로.

참으로 너는 땅의 입술이 아니냐.

 

그러나 네가 이것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가 죽으면 흙이 되마.

그래서 네 뿌리 밑에 가서

너를 북돋아 주마꾸나.

 

그래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네나 내나 우리는

불사(不死)의 둘레를 돌아다니는 중생이다.

그 영원의 역정(歷程)에서 닥드려 만날 때에

마치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될 때에

지금 내가 너를 삽붓 밟고 있는 것처럼

너도 나를 삽붓 밟아 주려무나.

 

<폐허>2호91920.1)수록

주제는 자연과의 친화

*요요끼: 일본 동경에 있는 들의 이름

 

 

<별의 아픔>

 

임이시여,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어린 아이가 뒹굴을 때에

감응적으로 깜짝 놀라신 일이 없으십니까.

 

임이시여,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세상 사람들이 지상의 꽃을 비틀어 꺾을 때에

천상의 별이 아파한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신생활>8호(1922.80수록

만물은 하나의 생명체다.

만물에는 같은 피가 통하여 흐른다는 윤회와 원(圓)사상에 바탕을 둔 시

 

 

<말>

 

말님.

나는 당신이 웃는 것을 본 일이 없읍니다.

언제든지 숙명을 체관(諦觀)한 것 같은 얼굴로

간혹 웃는 일은 있으나

그것은 좀처럼 하여서는 없는 일이외다.

대개는 침묵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온순하게 물건을 운반도 하고

사람을 태워 가지고 달아나기도 합니다.

 

말님, 당신의 운명은 다만 그것뿐입니까.

그러하다는 것은 너무나 섭섭한 일이외다.

나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의 악을 볼 때

항상 내세의 심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이

당신의 운명을 생각할 때

항상 당신도 사람이 될 때가 있고

사람도 당신이 될 때가 있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신생활>8호(1922.8)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