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방랑의 마음........오 상순

바보처럼1 2006. 4. 30. 01:44

 

-방랑의 마음-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 .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한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

 

바다를 마음에 불러 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다 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오도다.

 

망망한 푸른 해원-

마음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의 향기

코에 서리도다.

 

 

<동명>18호(1923.1)수록

*흐름: 의식의 흐름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무한한 시간 속의 유한한 육신

 

 

-첫날 밤-

 

어어 밤은 깊어

화촉동방의 촛불은 꺼졌다.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

 

그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바다 속에서

어족(魚族)인 양 노니는 데

홀연 그윽히 들리는 소리 있어,

 

아야......야!

태초 생명의 비밀 터지는 소리

한 생명 무궁한 생명으로 통하는 소리

열반(涅槃)의 문 열리는 소리

오오 구원의 성모 현빈(玄牝)이여!

 

머언 하늘의 뭇 성좌는

이 밤을 위하여 새로 빛닐진저!

 

밤은 새벽을 배(孕胎)고

침침히 깊어 간다.

 

침침():속력이 무척 빠르게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아시아의 진리는 밤의 진리다_

 

아시아는 밤이 지배한다. 그리고 밤을 다스린다.

밤은 아시아의 마음의 상징이요, 아시아는 밤의 실현이다.

아시아의 밤은 영원의 밤이다. 아시아는 밤의 수태자(受胎者)이다.

밤은 아시아의 산모요 산파이다.

아시아는 실로 밤이 낳아 준 선물이다.

밤은 아시아를 지키는 주인이요 신이다.

아시아는 어둠의 검이 다스리는 나라요 세계이다

 

아시아의 밤은 한없이 깊고 속 모르게 깊다.

밤은 아시아의 심장이다.아시아의 심장은 밤에

고동한다.

아시아는 밤의 호흡 기관이요, 밤은 아시아의 호흡이다.

밤은 아시아의 눈이다. 아시아는 밤을 통해서 일체상을 뚜렸이 본다.

올빼미 모양으로----

밤은 아시아의 귀다. 아시아는 밤에 일체음을 듣는다.

 

밤은 아시아의 감각이요, 감성이요, 성욕(性慾)이다.

아시아는 밤에 만유애(萬有愛)를 느끼고 임을 포옹한다.

밤은 아시아의 식욕이다. 아시아의 몸은 밤을 먹고 생성한다.

아시아는 밤에 그 영혼의 양식을 구한다, 맹수 모양으로.

밤은 아시아의 방순(芳醇)한 술이다. 아시아는 밤에 취하여 노래하고 춤춘다.

 

밤은 아시아의 마음이요,오성(悟性)이요, 그 행(行)이다.

아시아의 인식도 예지도 신앙도 모두 밤의 실현이요,표현이다.

오-  아시아의 마음은 밤의 마음-  아시아의 생리계통과

정신 체계는 실로 아시아의 밤의 신비적 소산인저-

 

밤은 아시아의 미학이요 종교이다.

밤은 아시아의 유일한 사랑이요, 자랑이요, 보배요, 그 영광이다.

밤은 아시아의 영혼의 궁전이요, 개성의 터요, 성격의 틀이다.

밤은 아시아의 가진 무진장의 보고이다, 마법사의 마술의 보고와도 같은-

밤은 아시아요, 아시아는 곧 밤이다.

아시아의 유구한 생명과 개성과 성격과 역사는 밤의 기록이요,

밤 신(神)의 발자취요, 밤의 조화요, 밤의 생명의 창조적 발전사-

 

보라- 아시아의 상하 대지와 물상(物相)과 풍물과 격과 문화-

유상 무상의 일체상이 밤의 세례를 받지 않은 자 있는가를-

아시아의 산맥은 아시아를 물의 리듬을 상징하고,

아시아의 물의 리듬은 아시아의 밤의 리듬을 상징하고-

앙시아의 딸들의 칠빛 같은 머리의 흐름은 아시아의 밤의 그윽한 호흡의 리듬-

 

한 손으로 지축을 잡아 흔들고 천지를 함토(含吐)하는

아무리 억세고 사나운 아시아의 사나이라도

그 마음 어느 구석인지 숫처녀의 머리털과도 같이

끝모르게 감돌아드는 밤물결의 흐름 같은

리듬의 곡선은 그윽히 내리어 흐르나니-

 

그리고 아시아의 아들들이 자기를 팔아 술과 미와 한숨을 사는

호탕한 방유성(放遊性)도, 감당키 어려운 이 밤 때문이라 하리라.

밤에 취하고,밤을 사랑하고, 밤을 즐기고,밤을 탄미(嘆美)하고,

밤은 숭배하고- 밤에 나서 밤에 살고, 밤 속에 죽는 것이 아시아의 운명인가.

 

아시아의 침묵과 정밀과 유적(幽寂)과 고담(枯淡)과 전아(典雅)와

곡선과 여운과 현회(玄晦)와 유영(幽影)과 후광과 또 자미 제호미(醍味)-는

아시아의 밤신들의 향연의 교향악은 악보인저.

오!  장엄하고 유현하고 신비롭고 불가사의 한 아시아의 밤이여-

 

태양은 연소하고 자극하고 과장하고 오만하고 군림하고 명령한다.

그리고 남성적이요, 부격(父格)이요 적극적이요 공세적이다.

따라서 물리적이요, 현실적이요 학문적이요 자기중심적이요

투쟁적이요 물체적이요 물질적이다.

 

태양의 아들과 딸은 기승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건설하고 파괴하고 돌진한다.

백일하에 자신 있게 만유를 분석하고ㅡ 해부하고 종합하고 통일하고,

성한 줄만 알고 쇠하는 줄 모르고 기세 좋게    모험하고

제작하고 외치고 몸부림치고 피로한다.

차별상에 저회(低廻)하고 유(有)의 면에 고집한다.

여기 뜻 아니한 비극의 배태(胚胎)와 탄생이 있다.

 

1922년도 작품.시의 기법 따위는 무시하고 사상을 위주로 노래했다.

주제는 아시아의 전통과 성격과 그 현실

*일체상: 모든 형상

*만유애: 우주 만물에 대한 사랑

*방순: 향기 높은 술

*오성: 마음의 능력.지성

*고담:속되지 않고 아취가 있음

*유적:깊숙하고 고요함

*현회: 눈에 아물거림

*유영: 아스므레한 영상

*차별상: 존재하는 만상

*저회: 머리 술여 사색하며 왔다갔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