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박 영희.................유령의 나라

바보처럼1 2006. 5. 12. 22:36

<유령의 나라>

 

꿈은 유령의 춤추는 마당

현실은 사람의 괴로움 불붙이는

싯벌건 철공장(鐵工場)

 

눈물은 불에 단

괴로움의 찌꺼기

사랑은 꿈 속으로 부르는 여신!

 

아! 괴로움에 타는

두 사람 가슴에

꿈의 터를 만들어 놓고

유령과 같이 춤을 추면서

타오르는 사랑은

차디찬 유령과 같도다.

 

현실의 사람 사람은

유령을 두려워 떠나서 가나

사랑을 가진 우리에게는

꽃과 같이 아름답도다.

 

아! 그대여 !

그대의 흰 손과 팔을

너 어둔 나라로 내밀어 주시오!

 

내가 가리라, 내가 가리라.

그대의 흰 팔을 조심해 밟으면서!

유령의 나라로, 꿈의 나라로

나는 가리라! 아 그대의 탈을-.

 

*백조2호(1923)수록.

보들레르의 악마주의적인 퇴폐에 바탕을 둔 시로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주제는 죽음의 찬미

 

 

<월광으로 짠 병실>

 

밤은 깊이도 모르는 어둠 속으로

끊임없이 그르고 또 빠져서 갈 때

어둠 속에 낯을 가린 미풍의 한숨은

갈 바를 몰라서 애꿎은 사람의 마음만

부질없이도 미치게 흔들어 놓도다.

    가장 아름답던 달님의 마음이

    이 때이면은 남몰래 앓고 서 있다.

 

근심스럽게도 한발 한발 걸어 오르는 달님의

정맥혈(靜脈血)로 짠 면사(面紗) 속으로 나오는

병든 얼굴에 말 못하는 근심의 빛이 흐를 때,

갈 바를 모르는 나의 헤매는 마음은

부질없이도 그를 사모하도다.

    가장 아름답던 나의 쓸쓸한 마음은

    이 때로부터 병들기 비롯한 때이다.

 

달빛이 가장 거리낌없이 흐르는

넓은 바닷가 모래 위에다

나는 내 아픈 마음을 쉬에 하려고

조그만 병실을 만드려 하여

달빛으로 쉬지 않고 쌓고 있도다.

    가장 어린애같이 빈 나의 마음은

    이 때에 처음으로 무서움을 알았다. 

 

한 숨과 눈물과 후회와 분노로

앓는 내 마음의 임종이 끝나려 할 때

내 병실로는 어여쁜 새 처녀가 들어오면서

-당신의 앓는 가슴 위에 우리의 손을 대라고 달님이 우리을 보냈나이다-

  이 때로부타 나의 마음에 감추어 두었던

  희고 흰 사랑에 피가 묻음을 알았도다.

 

나는 고마와서 그 처녀들의 이름을 물을 때

-나는 '슬픔'이라 하나이다.

나는 '두려움'이라 하나이다.

나는 '안일(安逸)'이라고 부르나이다.

그들의 손은 아픈 내 가슴 위에 고요히 닿도다.

   이 때로부터 내 마음이 미치게 된 것이

   끝없이 고치지 못하는 병이 되었도다.

 

*백조3호(1923.9) 수록

퇴폐적이며 감상적인 낭만시

*주제는 슬픈 조국의 현실

*일찌기 회월은 이 작품을 가리켜 현실에 대한 도피라고 밝힌 바 있다. 즉"현실ㅇ르 떨쳐 버린 순수화"라고 주장했다.

이 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한결같은 감상(感傷)이나 현실 도피 경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