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이 장희...........봄철의 바다

바보처럼1 2006. 5. 19. 23:46

<봄철의 바다>

 

저기 고요히 멈춘

기선의 굴뚝에서

가늘은 연기가 흐른다.

 

엷은 구름과

낮겨운 햇볕은

자장가처럼 정다웁구나.

 

실바람 물살지우는 바다 위로

나직하게 VO- 우는

기적의 소리가 들린다.

 

바다를 향하여 기울어진 풀두렁에서

어느 덧 나는

휘파람 불기에도 피로하였다.

 

*신민(新民)26호(1927.6) 수록

*주제는 봄철이 주는 권태감

*VO- : "보오"하고 울리는 기적소리

 

 

<하일 소경(夏日小景)>

 

운모같이 빛나는 서늘한 테이블

부드러운 얼음 설탕 우유

피보다 무르녹은 딸기를 담은 유리잔

얇은 옷을 입은 저윽히 고달픈 새악씨는

 

기름한 속눈썹을 깔아 맞히며

가냘픈 손에 들은 은사시로

유리잔의 살찐 딸기를 부수노라면

담홍색의 청량제가 꽃물같이 흔들린다.

 

은사시에 옮기인 꽃물은

새악시의 고요한 입술을 앵도보다 곱게도 물들인다.

새악씨는 달콤한 꿀을 마시는 듯

그 얼굴은 푸른 잎사귀같이 빛나고

 

콧마루의 수은 같은 땀은 벌써 사라졌다.

그것은 밝은 하늘을 비친 작은 못 가운데서

거울같이 피어난 연꽃의 이슬을

헤엄치는 백조가 삼키는 듯하다.

 

*<상화와 고월> 수록

무척 감각적이고 선명한 이미지를 끼쳐 준다.

*꽃물: 물을 타지 않은 진한 국물

*은사시: 은으로 만든 스푼

 

 

<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금성2호(1924.3) 수록

최초의감각시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주제는 고양이에서 느끼는 봄의 감각

*1연의 "털"은 감촉, 2연의"눈"은 정염, 3연의" 입술"은 감성, 4연의 "수염"은 생기를 느끼게 한다.

 

 

<고양이의 꿈>

 

시내 위에 돌다리

다리 아래 버드나무

봄 안개 어리인 시냇가에 푸른 고양이

곱다랗게 단장하고 빗겨 있오 울고 있오

기름진 꼬리를 쳐들고

밝은 애달픈 노래를 부르지요.

푸른 고양이는 물오른 버드나무에 스르를 올라가

버들가지를 안고 버들가지를 흔들며

또 목놓아 웁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멀리서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고

칼날이 은같이 번쩍이더니

푸른 고양이도 볼 수 없고.

꽃다운 소리도 들을 수 없도

그저 쓸쓸한 모래 위에 선혈이 흘러 있소.

 

*고양이가 꾼 꿈이 아니라, 시인 자신이 꿈에 본 고양이를 표현한 것.

*병적이요 환각적이요 또 퇴폐적이기도 하다. 보들레르적인 세계를 느끼게 해 주는 시

 

 

<청천(靑天)의 유방>

 

어머니 어머니라고

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

푸른 하늘에

따스한 봄이 흐르고

또  흰 별을 놓으며

불룩한 유방이 달려 있어

이슬 맺힌 포도 송이보다 더 아름다와라.

 

탐스런 유방을 볼지어다.

아아 유방으로서 달큼한 젖이 방울지려 하누나

이때야말로 애구(哀求)의 정이 눈물 겨웁고

주린 식욕이 입을 벌리도다

이 무심한 식욕

이 복스러운 유방.......

쓸쓸한 심령이여 쏜살같이 날라지어다.

푸른 하늘에 날라지어다.

 

*여명2호(1925.9)수록

*이 장희를 가리켜 20년대의 모더니스트라고 하는데, 이 시는 그런 평가를 듣기에 알맞는다.

감상적 낭만주의의 시가 판을 치던 그 당시, 고월은 아주 냉정한 수법으로 시를 썼던 것이다.

 

 

<쓸쓸한 시절>

 

어느 덧 가을은 깊어

들이든 뫼이든 숲이든

모두 파리해 있다.

 

언덕 위에 우뚝히 서서

개가 짖는다.

날카롭게 짖는다.

 

비-ㄴ 들에

마른 잎 태우는 연기

가늘게 가늘게 떠오른다.

 

그대여

우리들 머리 숙이고

고요히 생각할  그 때가 왔다.

 

*감각적인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