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비밀>
임은 내게 황금으로 장식한 작은 상자와
상아로 만든 열쇠를 주시면서,
언제든지 그의 얼굴이 그리웁거든
가장 갑갑할 때에 열어 보라 말씀하시다.
날마다 날마다 나는 임이 그리울 때마다
황금상(箱)을 가슴에 안고 그 위에 입맞추었으나,
보다 더 갑갑할 때가 후일에 있을까 하여
마침내 열어 보지 않았노라.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 먼 먼 후일에
내가 참으로 황금상을 열고 싶었을 땐엔,
아아 !그 때엔 이미 상아의 열쇠를 잃어을 것을.
(황금상- 그는 우리 임께서 날 버리고 가실 때
최후에 주신 영원의 영원의 비밀이러라,)
*상징적 수법으로 쓴 시
1920년대의 시임을 감안할 때 무척 참신스럽다. 흠이 있다면 마지막 연이 군더더기로 덧붙은 점이다.
*주제는 인생의 삶의 감정.
<산 길>
1
산길을 간다, 말없이
호올로 산길을 간다.
해는 져서 새 소리 그치고
짐승의 발자취 그윽히 들리는
산길을 간다, 말없이
밤에 호올로 산길을 간다.
2
고요한 밤
어두운 수풀
가도 가도 험한 수풀
별 안 보이는 어두운 수풀
산길은 험하다.
산길은 멀다.
3
꿈 같은 산길은
화톳불 하나.
(길 없는 산길은 언제나 끝나리)
(캄캄한 밤은 언제나 새리)
바위 위에
화톳불 하나.
*여명2호(1924) 수록
*캄캄한 밤: 일제 시대를 상징함.
*산길: 일제 시대에 젊은이들이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걸어가던 길.
*화톳불: 조국 광복의 여명
<산 넘고 물 건너>
산 넘고 물 건너
내 그대를 보려 길 떠났노라.
그대 있는 곳 산 밑이라기
내 산길을 토파 멀리 오너라.
그대 있는 곳 바닷가라기
내 물결을 헤치고 멀리 오너라.
아아, 오늘도 잃어진 그대를 찾으려
이름 모를 이 마을에 헤메이노라.
*시집<조선의 맥박>(1932.2) 수록
"그대"를 찾기 위한 목적 달성의 인내적 사모를 노래한 시.
*도파: 샅샅이 뒤지면서 찾아
<조선의 맥박>
한밤에 불 꺼진 재와 같이
나의 정열이 두 눈을 감고 잠잠할 때에,
나는 조선의 힘 없는 맥박을 짚어 보노라.
나는 임의 모세관, 그의 맥박이로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훤한 동녘 하늘 밑에서
나의 희망과 용기가 두 팔을 뽐낼 때면,
나는 조선의 소생된 긴 한숨을 듣노라.
나는 임의 기관이요, 그의 숨결이로다.
그러나 보라, 이른 아침 길가에 오가는
튼튼한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 그들의 공 던지는
날랜 손발 책보 낀 여생도의 힘 있는 두 팔
그들의 빛나는 얼굴, 활기 있는 걸음걸이
아아! 이야말로 참으로 조선의 맥박이 아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갓난아이의 귀여운 두 볼
잦 달라 외치는 그들의 우렁찬 울음, 작으나마 힘찬,
무엇을 잡으려는 그들의 손아귀
해죽해죽 웃는 입술, 기쁨에 넘치는 또렸한 눈동자-
아아! 조선의 대동맥, 조선의 폐는 아기야 너에게만 있도다.
*문예공론 창간호(1929.5)수록
자라나는 새 세대를 소재로 하여, 그들에 대한 기대를 노래한 시.
*주제는 젊은 세대들에 대한 기대감.
<해곡(海曲)3장>
1
임 실은 배 아니언만
하늘 가에 돌아가는 흰 돛을 보면
까닭 없이 이 마음 그립습내다.
호올로 바닷가에 서서
장산에 지는 해 바라보노라니
나도 모르게 밀물이 발을 적시 옵내다.
2
아침이면 해 뜨자
바위 위에 굴 캐러 가고요
저녁이면 옅은 물에서 소라도 줍고요.
물결 없는 밤에는
고기잡이 배 타고 달내섬 갔다가
안 물리면 달만 싣고 돌아오지요.
3
그대여
시를 쓰랴거든 바다로 오시오-
바다 같은 숨을 쉬랴거든.
임이여
사랑을 하랴거든 바다로 오시오-
바다 같은 정열에 잠기랴거든.
*조선문단(1925.10) 수록
스케치풍의 가벼운 시
*어미에 서북 방언을 써서 청걱효과를 내고 있다.
"장산(長山串), 달내섬(月出島)" 등 향토적 지명이 나오므로 더욱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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