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양 주동............영원한 비밀

바보처럼1 2006. 5. 19. 23:02

<영원한 비밀>

 

임은 내게 황금으로 장식한 작은 상자와

상아로 만든 열쇠를 주시면서,

언제든지 그의 얼굴이 그리웁거든

가장 갑갑할 때에 열어 보라 말씀하시다.

 

날마다 날마다 나는 임이 그리울 때마다

황금상(箱)을 가슴에 안고 그 위에 입맞추었으나,

보다 더 갑갑할 때가 후일에 있을까 하여

마침내 열어 보지 않았노라.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 먼 먼 후일에

내가 참으로 황금상을 열고 싶었을 땐엔,

아아 !그 때엔 이미 상아의 열쇠를 잃어을 것을.

 

(황금상- 그는 우리 임께서 날 버리고 가실 때

최후에 주신 영원의 영원의 비밀이러라,)

 

*상징적 수법으로 쓴 시

1920년대의 시임을 감안할 때 무척 참신스럽다. 흠이 있다면 마지막 연이 군더더기로 덧붙은 점이다.

*주제는 인생의 삶의 감정.

 

 

<산 길>

                  1

산길을 간다, 말없이

호올로 산길을 간다.

 

해는 져서 새 소리 그치고

짐승의 발자취 그윽히 들리는

 

산길을 간다, 말없이

밤에 호올로 산길을 간다.

                    2

고요한 밤

어두운 수풀

 

가도 가도 험한 수풀

별 안 보이는 어두운 수풀

 

산길은 험하다.

산길은 멀다.

                      3

 

꿈 같은 산길은

화톳불 하나.

 

(길 없는 산길은 언제나 끝나리)

(캄캄한 밤은 언제나 새리)

 

바위 위에

화톳불 하나.

 

*여명2호(1924) 수록

*캄캄한 밤: 일제 시대를 상징함.

*산길: 일제 시대에 젊은이들이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걸어가던 길.

*화톳불: 조국 광복의 여명

 

 

<산 넘고 물 건너>

 

산 넘고 물 건너

내 그대를 보려 길 떠났노라.

 

그대 있는 곳 산 밑이라기

내 산길을 토파 멀리 오너라.

 

그대 있는 곳 바닷가라기

내 물결을 헤치고 멀리 오너라.

 

아아, 오늘도 잃어진 그대를 찾으려

이름 모를 이 마을에 헤메이노라.

 

*시집<조선의 맥박>(1932.2) 수록

"그대"를 찾기 위한 목적 달성의 인내적 사모를 노래한 시.

*도파: 샅샅이 뒤지면서 찾아

 

 

<조선의 맥박>

 

한밤에 불 꺼진 재와 같이

나의 정열이 두 눈을 감고 잠잠할 때에,

나는 조선의 힘 없는 맥박을 짚어 보노라.

나는 임의 모세관, 그의 맥박이로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훤한 동녘 하늘 밑에서

나의 희망과 용기가 두 팔을 뽐낼 때면,

나는 조선의 소생된 긴 한숨을 듣노라.

나는 임의 기관이요, 그의 숨결이로다.

 

그러나 보라, 이른 아침 길가에 오가는

튼튼한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 그들의 공 던지는

   날랜 손발 책보 낀 여생도의 힘 있는 두 팔

그들의 빛나는 얼굴, 활기 있는 걸음걸이

아아! 이야말로 참으로 조선의 맥박이 아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갓난아이의 귀여운 두 볼

잦 달라 외치는 그들의 우렁찬 울음, 작으나마 힘찬,

  무엇을 잡으려는 그들의 손아귀

해죽해죽 웃는 입술, 기쁨에 넘치는 또렸한 눈동자-

아아! 조선의 대동맥, 조선의 폐는 아기야 너에게만 있도다.

 

*문예공론 창간호(1929.5)수록

자라나는 새 세대를 소재로 하여, 그들에 대한 기대를 노래한 시.

*주제는 젊은 세대들에 대한 기대감.

 

 

<해곡(海曲)3장>

                     1

임 실은 배 아니언만

하늘 가에 돌아가는 흰 돛을 보면

까닭 없이 이 마음 그립습내다.

 

호올로 바닷가에 서서

장산에 지는 해 바라보노라니

나도 모르게 밀물이 발을 적시 옵내다.

                     2

 

아침이면 해 뜨자

바위 위에 굴 캐러 가고요

저녁이면 옅은 물에서 소라도 줍고요.

 

물결 없는 밤에는

고기잡이 배 타고 달내섬 갔다가

안 물리면 달만 싣고 돌아오지요.

                     3

 

그대여

시를 쓰랴거든 바다로 오시오-

바다 같은 숨을 쉬랴거든.

 

임이여

사랑을 하랴거든 바다로 오시오-

바다 같은 정열에 잠기랴거든.

 

*조선문단(1925.10) 수록

스케치풍의 가벼운 시

*어미에 서북 방언을 써서 청걱효과를 내고 있다.

"장산(長山串), 달내섬(月出島)" 등 향토적 지명이 나오므로 더욱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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