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백 기만........청개구리

바보처럼1 2006. 5. 20. 00:31

<청개구리>

 

청개구리는 장마 때에 운다. 차디찬 비 맞은 나뭇잎에서 하늘을 원망하듯 치어다보며 목이 터지도록 소리쳐 운다.

 

청개구리는 불효한 자식이었다. 어미의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어미 청개구리가 " 오늘은 산에 가서 놀아라!' 하면 그는 물에 가서 놀았고, 또 "물에 가서 놀아라!" 하면 그는 기어이 산으로만 갔었느니라.

 

알뜰하게 애태우던 어미 청개구리가 이 세상을 다 살고 떠나려 할 때, 그의 시체를 산에 묻어 주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모로만 가는 자식의 머리를 만지며 "내가 죽거든 강가에 묻어다고!"하였다.

 

청개구리는 어미의 죽음을 보았을 때 비로소 천지가 아득하였다. 그제서야 어미의 생전에 한 번도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 뼈 아프게 뉘우쳐졌다.

 

청개구리는 조그만 가슴에 슬픔을 안고, 어미의 마지막 부탁을 좇아 물 맑은 강가에 시체를 묻고, 무덤 위에 쓰러져 발버둥치며 통곡하였다.

 

그 후로 장마비가 올 때마다 어미의 무덤을 생각하였다. 싯벌건 황토물이 넘어 원수의 황토물이 넘어 어미의 시체를 띄워갈까 염려이다.

 

그러므로 청개구리는 장마 때에 운다. 어미의 무덤을 생각하고는 먹을 줄도 모르고 자지도 않고 슬프게 슬프게 목놓아 운다.

 

*금성창간호(1924.1) 수록

청개구리의 전설을 소재로 한 산문시.

청개구리의 슬픔은 바로 우리민족의 현실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제는 조국 상실의 슬픔

 

 

<은행나무 그늘>

 

훌륭한 그이가 우리 집을 찾아왔을 때

이상하게도 두 빰이 타오르고 가슴은 두근거렸어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바느질만 하였어요.

훌륭한 그이가 우리 집을 떠날 때에도

여전히 그저 바느질만 하였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이에게 선물하였는지 아십니까?

 

나는 그이가 돌아간 뒤에 뜰 앞 은행나무 그늘에서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노래를 불렀어요.

우리 집 작은 고양이는 봄볕을 흠뻑 안고 나무 가리 옆에 앉아

눈을 반만 감고 내 노래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내 노래가 무엇을 말하였는지 누가 아시리까?

 

저녁이 되어 그리운 붉은 등불이 많은 꿈을 가지고 왔을 때

어머니는 젖먹이를 잠재려 자장가를 부르며 아버지를 기다리시는데

나는 어머니 방에 있는 조그만 내 책상에 고달픈 몸을 실리고 뜻도 없는 책을 보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 책에서 보고 있었는지 모르시리다.

 

어머니, 나는 꿈에 그이를, 그리들 보았어요.

흰 옷 입고 초록 띠 드리운 성자 같은 그이를 보았어요.

그 흰 옷과 초록 띠가 어떻게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누가 아시리까?

오늘은 은행나무 그늘에는 가는 노래가 떠돕니다.

고양이는 나무 가리 옆에서 어제같이 조을고요.

하지만 그 노래는 늦은 봄 바람처럼 괴롭습니다.

 

*금성3호(1924.5) 수록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진다. 이 작품이 베일에 싸인 것처럼 신비롭고 섬세하게 느껴지는 것은 타고르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어머니"를 조국으로 생각하고 또 "그이"를 조국 광복으로 풀이 한다면 이 시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고 별>

 

그대여!

나는 이 땅을 떠나갑니다.

멀리 멀리 삼만리나 아득한 저편

북극이란 빙세계를 찾아갑니다.

 

거기는 세간 물결이 못 미친는 곳

추악도 없고 갈등도 없고

눈과 얼음이 조촐하길래

순박한 백곰들의 낙원이라오.

 

영롱한 얼음판에 뛰고 뒹굴고

발가벗은 몸으로 살아가려오

밤에는 등불 없이 달 돋아오고

외로울 때 백곰과 춤추렵니다.

 

오오 그애여, 안녕힌 계세요!

이제는 아무래도 떠나렵니다.

조그만 내 가슴에 불이 붙어서

언제나 식을 날이 찾아오려나.

 

만약에 나 간 뒤에 누가 묻거든

머나먼 곳으로 갔다고 해요.

외로운 그림자를 사랑 삼아서

울며 웃으며 비틀거리며....... .

 

*개벽(1923.3) 수록

이 시가 쓰여진 무렵의 시인들 거의 모두가 그러했듯이 허무주의 적인 경향이 엿보이는 시이다.

7.5조와 민요 형식을 바탕으로 한 자유시.

*주제는 새로운 이상 세계에 대한 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