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귀로(金剛歸路)>
금강이 무엇이뇨 돌이요 물이로다
돌이요 물일러니 안개요 구름이라
안개요 구름이어니 있고 없고 하더라
금강이 어드메뇨 동해의 가이로다
갈제는 거기러니 올 제는 흉중에 있네
라라라(라라라) 이대로 지켜 함께 늙자 하노라
*동아일보(1930) 수록
<오륙도>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흐리락 맑으락 하매 몇 섬인 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무 섬이
안개나 자욱하면 아득한 빈 바다라
오늘은 비 속에 보매 더더구나 몰라라.
그 옛날 어느 분도 저 섬을 헤다 못해
헤던 손 내리고서 오륙도라 이르던가
돌아가 나도 그대로 어렴풋이 전하리라.
*조광(1936)수록.
<단풍 한 잎>
단풍 한 잎사귀 손에 얼른 받으오니
그대로 내 눈 앞이 서리치는 풍악산을
잠긴 양 마음이 뜬 줄 너로 하여 알겠구나.
새빨간 이 한 잎을 자세히 바라보매
풍림(楓林)에 불 태우고 넘는 석양같이 뵈네
가을 밤 궂은 비소리도 귀에 아니 들리는가.
여기가 오실 덴가 바람에 지옵거든
진주담 맑은 물에 떠서 흘러 흐르다가
그 산중 밀리는 냇가에서 고이 살아 지올 것을.
*동아일보(1932) 수록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헌사가 있다."우인(友人) 금아(琴兒)풍악으로서 돌아와 내산(內山)단풍 한 잎을 선물 주기로 내서실의 조그마한 보물 금강 시존(詩存) 속에 넣고 오래 지니기를 심약(心約)하며 이에 몇장 노래를 적어 그에게 답례하다."
<천지송(天地頌)>
보라, 저 울멍줄멍 높고 낮은 산줄기들
저마다 제자리에 조용히 엎드렸다.
산과 물 어느 것 한 가지도 함부로 된 것 아니로구나.
황금 방울간이 노오란 저녁해가
홍비단 무뉘 속에 수를 놓고 있다.
저기 저 구름 한 장도 함부로 건 것 아니로구나.
지금 저 들 밖에 깔려 오는 고요한 황혼!
오늘 밤도 온 하늘에 보석별들이 반짝이리
그렇다! 천지 자연이 함부로 된 것 아니로구나.
<가인산(可人山)>
가인산 저문 날을 밤 기다려 섰읍니다.
이 밤이 스무날 달이구려 이즐도록 아까와서.
우수수 지는 잎이 어깨를 때립니다.
이 후엔 가을 나무 아래 아니 서려 합니다.
눈감고 막대 짚고 언덕 아래 섰노라니
모래알 흐르는 소리 간지는 듯 좋읍니다.
풀 속에 산토끼들 공연히 놀라 뛰는 구려.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밖에 아무것도 없는 빈 산인데.
가인산 깊은 밤에 달이 이제야 오릅니다.
새도록 그림자 데리고 이 밤을 즐기고 싶습니다.
<효대(孝臺)>
일유봉은 해 뜨는 곳, 월유봉은 달 뜨는 곳
동백나무 우거진 숲을 울삼아 둘러치고,
네 사자 호위 받으며 웃고 서 계신 저 어머니!
천 년을 한결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여쁜 아드님이 바치시는 공양이라,
효대에 눈물어린 채 웃고 서 계신 저 어머니!
그리워 나도 여기 합장하고 같이 서서,
저 어머니 아들 되어 몇 번이나 절하옵고,
우러러 다시 보오매 웃고 서 계신 저 어머니!
*소재가 된 효대는 지리산 화엄사에 있다.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지을 때 어머니으 명복을 빌기 위해 돌탑을 만들었다
*주제는 어머니에 대한 영원한 효심.
<고지가 바로 저긴데>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워적거리며 가야만 한느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등켜 안고 가야만 한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핏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자유문학 창간호(1956.5)수록
"고지"는 통일에 대한 숙원. 제재는 국토 양단의 민족 수난
*주제는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의지.
<심산풍경>
도토리, 서리나무 썩고 마른 고목 등걸,
천년 비바람에 뼈만 앙상 남았어도,
역사는 내가 아느니라 교만스레 누웠다.
풋나기 어린 나무저라사 우줄대도
숨기신 깊은 뜻이야 나 아니고 누가 알랴.
다람쥐 줄을 태우며 교만스레 누웠다.
*노산 시조집(1937)수록
한라산에서 지은 연시조
제재는 고목등걸
*주제는 자연의 신비성에 대한 달관.
*숨기신 뜻: 물상속에 숨기어 있는 대자연의 섭리.
<성불사의 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흔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뎅그렁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일 젠 또 들릴까 소리나기 가다려져
세도록 풍경 소리 데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너는 지금 어디 있나
누더기 한 폭 걸치고
토막(土幕)속에 누워 있나
네 소원 이룰 길 없어
네 거리를 헤매나.
오늘 아침도 수없이 떠나가는 봇짐들
어디론지 살 길을 찾아 헤매는 무리들이랑
그 속에 너도 섞여서
앞선 마루를 넘어갔나.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낙조보다도 더 쓸쓸한 조국아
긴 긴 밤 가얏고 소리마냥
가슴을 파고드는 네 이름아
새 봄날 도리화(桃李花)같이
활짝 한 번 피어 주렴.
*노산 문선(1958)수록
일제 식민지 시대의 비참한 조국으 모습을 읊은 애국시.
내 조국은 "누더기 한 폭 걸치고" 있는 것처럼 남루한 조국인 것이다.
*주제는 빼앗긴 조국에 대한 한과 광복에의 기대감
<밤 빗소리>
천하 뇌고인(뇌고인)들아 밤 빗소리 듣지 마소
두어라 이 한 줄밖에 더 써 무엇 하리오.
<소경 되어지이다.>
뵈오려 안뵈는 님 눈 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지이다.
<가고파>
-내 마음 가 있는 그 벗에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도었는고
온갖 것 다 부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 보고 저기 가 알아 보나
내 몫엔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처자들 어미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잠들어 죄 없는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잦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 동무 노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동아일보(1932.1.8)수록
"내 고향 남쪽바다"는 작자의 고향인 마산을 뜻한다. 그러나 이 시조를 단순한 향수의 노래로 생각해서는 안 되겠고, 일제 암흑기라는 시대 배경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야 하리라.
*주제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통한 크나 큰 향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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