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김 동명..........파초

바보처럼1 2006. 5. 31. 00:05

<파초>

 

조국은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조광(1936.1)수록

파초의 원산지 남국에서 이국으로 와 외로이 서 있는 한 그루 파초를 보고, 작자 자신이 감정 이입하여 표현.

*주제는 조국을 잃은 외로운 파초와의 공동적 운명 의식.

이미지 전개는 "너(1-5행)- 나(6-9행)- 우리(10행)"이다.

 

 

<내 마음은 >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 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 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조광 3권 6호(1937.6)수록

처음 두 에서는 사랑을 즐겁고 타오르는 것으로, 나중 두 연에서는 외롭고 슬픈 것으로 구살화하고 있다.

*주제는 사랑의 그리움

*이 시는 참신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1연은 꿈, 2연은 정열, 3연은 방황, 4연은 불안감이 매체로 되어 있다.

 

 

 

<우리말>

 

네게는 불멸의 향기가 있다.

네게는 황금의 음률이 있다.

네게는 영원한 생각의 감초인 보금자리가 있다.

네겐는 이제 혜성같이 나타날 보이지 않는 영광이 있다.

 

너는 동산같이 그윽하다.

너는 대양(大洋)같이 뛰논다.

너는 미풍같이 소곤거린다.

너는 처녀같이 꿈꾼다.

 

너는 우리의 신부(新婦)다.

너는 우리의 운명이다.

너는 우리의 호흡이다.

너는 우리의 전부이다.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이 일을 어쩌리.

네 발등에 향유를 부어 주진 못할망정,

네 목에 황금의 목걸이를 걸어 주진 못할망정,

도리어 네 머리 위에 가시관을 얹다니,

가시관을 얹다니... .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세상에 이럴 법이... .

우리는 못났구나, 기막힌 바보로구나.

그러나, 그렇다고 버릴 너는 아니겠지, 설마.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내 귀에 네 입술을 대어 다오.

그리고,다짐해 다오, 다짐해 다오. 

 

*1.2.3연은 조국어에 대한 찬미를  4연은 조국어를 천대했던 과거에 대한 뉘우침을

주제는 조국어에 대한 무한한 찬미와 애절한 염원.

*1연은 우리말의 내적 질적인면을 나열법과 직유법으로 노래했다.

2연은 우리말의 외적 동적인 면을 직유로 읊었다.

3연은 조국어의 가치를 은유로 읊었다.

4연은 위우침과 민족의 염원릉 반복법. 감탄법-생략법으로 오래했다.

 

 

<밤>

 

밤은

푸른 안개에 싸인 호수,

나는

잠의 쪽배를 타고 꿈을 낚는 어부다.

 

*시집<하늘>수록

2행은 신비롭고 낭만적인 이미지의 세계를 뜻한다.

*주제는 밤의 신비.

 

 

<손 님>

 

아이야, 너는 이 말을 몰고 저 牧草밭에 나아가 풀을 먹여라. 그리고 돌아와 방을 정히 치워 놓고 촉대를 깨끗이 닦아 두기를 잊어서는 아니 된다.

 

자, 그러면 여보게, 우리는 잠깐 저 산등에 올라가서 지는해에 고별을 보내고, 강가에 내려가서 발을 씻지 않으려나, 하면 황혼은 돌아오는길 위에서 우리를 맞으며 향수의 미풍을 보내 그대 옷자락을 희롱하리.

 

아아야, 이제는 촉대에 불을 혀어라. 그리고 나아가 삽짝문을 단단히 걸어 두어라. 부질없는 방문객이 귀빈을 맞는 이 밤에도 또 번거로이 내 을 두드리면 어쩌랴?

 

자, 그러면 여보게, 밤은 길것다, 우선 한 곡조 그대의 좋아하는 유랑의 노래부터 불러 주게나. 거기엔 떠도는 구름조각의 호탕한 정취가 있어 내 낮은 천정으로 하여금 족히 한 작은 하늘이 되게 하고 또 흐르는 물결의 유유한 음률이 있어 내 하염없는 번뇌의 지푸라기를 띄워 주데그려.

 

아이야, 내 악기를 이리 가져 오너라. 손이 부르거늘 주인에겐들 어찌 한 가락의 화답이 없을까 보냐. 나는 원래 서투른 악사라,고롭지 못한 음조에 손은 필연 웃으렷다. 허지만 웃은들 어떠냐?

그리고 아이야, 날이 밝거든 곧 말께 손질을 고이 해서 안장을 지어 두기를 잊지 말아라. 손님의 내일 길이 또한 바쁘시다누나.

 

자, 그러면 여보게, 잠은 내일 낮  나무 그늘로 미루고 이 밤은 노래로 새이세 그려. 내 비록 서투르나마 그대의 곡조에 내 악기를 맞춰보리.

그리고 날이 새이면 나는 결코 그대의 길을 더디게 하지는 않으려네. 허나 그대가 떠나기가 바쁘게 나는 다시 돌아오는 그대의 말방울소리를 기다릴 터이니.

 

*신동아(1934.6) 수록

주인 되는 이가 제 집 머슴아이에게 이르는 말과 손님에게 하는 말로써 이루어진 회화체의 구성이 특이하다.

마치 옛날의 은자 같은 멋을 풍기는 주인의 인품이 시 전편에 배여 있어 우리를 그 속으로 이끌어 들인다. 가히 전원파로 일컬어지는 작자의 秀作가운데 하나이다.  

 

 

<조 천명 여(弔天命女)>

 

            1

이슬 방울에도 휘이는 풀잎 모양,

실바람에도 고달픈 꽃송이는 아니던가

 

외로움과 한스러움은 이제사

"향수(鄕愁)" 마냥 풍기어,

 

"청(靑)모래 순" 벋은 길섶에

그 모습이 아련하다

 

            2

두견새 모양

목에 피가 맺히도록

 

인생을 울다가,

울다가

 

아아 드디러 그대

" 청자빛 하늘" 아래 영영 없구나

 

                 3

옳았도다

그대 삶이 옳았도다

 

인생은 본시

슬픈 것, 외로운 것

 

신도 빙그레 웃으며

그대를 맞으리

 

*여류시인 노 천명의 죽음을 애도하여 쓴 시.

이 시에서 따옴표 속의 구절들은 노 천명의 시 가운데서 뽑은 것이다.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시면>

-보들레르에게-

 

오 ! 님이여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찬 이슬에 붉은 꽃물에 젖은 당신의 가슴을

붉은 술과 푸른 아편에 하염없이 웃고 있는 당신의 마음을

또 당신의 혼의 상흔(傷痕)에서 흘러 내리는 모든 고운 노래를

 

오 ! 님이여 나는 당신의 나라를 믿습니다.

회색의 두꺼운 구름으로

해와 달과 별의 모든 보기 싫은 고혹(蠱惑)의 빛을 뒤덮어 버리고

정향(定向) 없이 휘날리는 낙엽의 난무 밑에서

그윽한 정적에 불꽃 높게 타는 강한 리듬의 당신의 나라를

마취와 비장(悲壯) 통열(痛悅)과 광희(狂喜) 침정(沈靜)과 냉소 환각(幻覺)과 독존(獨尊)의 당신의 나라

구름과 물결 백작(白灼)과 정향(精香)의

그리고도 오리려 극야(極夜)의 새벽 빛이 출렁거리는 당신의 나라를

오! 님이여 나는 믿습니다.

 

님이여! 내 그립어하는당신의 나라로

내 몸을 받읍소서.

살비린내 요란한 매혹의 몸도

시의 (屍衣)에 분망하는 상가집 같은 가을도

님 계신 나라에서야 볼 수 없겠지요.

 

오직 눈자라는 끝까지 높이 쌓인 흰 눈과

굵다란 멜로디에 비장하게 흔들리는 현훈(眩暈)한 극광(極光)이 두 가지가 한데 어룰려져서는

백열(白熱)의 키스기 되며

사(死)의 위대한 서곡이 되며 

푸른 웃음과 검은 눈물이 되며

생과 사로 씨와 날을 두어 짜내인 장미빛 방석이 되어

버림을 당한 곤비(困憊)한 혼(魂)들에 여읜 발자욱을 지키고 있는

님의 나라로 오 ! 내 몸을 받읍소서.

 

살뜰한 님이여!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신면

(당신의 나라로 들어가는)

그리고 또 철회색(鐵灰色)의 두꺼운 구름으로 내 가슴을 덮어 주실 것이면

나는 님으 번개 같은 노래에

낙엽같이 춤추겠나이다.

 

정다운 님이여! 당신이 만약 문을 열어 주시면

(당신의 전당(殿堂)으로 들어가는)

그리고 또 당신의 가슴에서 타는 정향을 나로 하여금 만지게 할 것이면

나는 님의 바다 같은 한숨에

물고기 같이 잠겨 버리겠나이다.

 

님이여! 오! 마왕(魔王) 같은 님이여!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시면

(당신의 밀실로 들어가는)

그리고 또 북극의 오로라 빛으로 내 몸을 쓰다듬어 줄 것이면

나는 님의 우렁찬 웃음소리에 기분 내어

눈 높이 쌓인 곳에 무덤을 파겠나이다.

 

  

*섬세한 서정으로 유명한 김동명도 초기에는 퇴폐적인 경향을 따른 작품들을 썼다.

이 작품은 (개벽) 제 40호(1923.10호)에 실린 것으로서, 헌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프랑스의 탐미파 시인 보들레르에게 바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계열의 대표작으로 되어 있다.

 

 

<달>

 

달은 황혼과 함께

언제까지나 믿어도 좋을 나의 친구다.

이들밖에 실로 내 집ㅇ르 찾아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달은 저의 가난한 친구를 위하여

백금으 모단(毛단)을 가져다가

나의 뜰에 깔아 준다.

나는 제왕(제왕)같이 그 위를 거닐며

나의 성대한 아침을 꿈꾼다.

 

 

<진주만>

 

아득히 감람(紺藍) 물결 위에 뜬

한 포기 수련화(睡蓮花).

 

아름다운 꽃잎 속속들이

동방 역사의 새 아침이 깃들여.....

 

그대의 발길에 휘감기는 것은 물결이냐, 또한 그리움이냐.

꿈은 정사(征邪)의 기폭에 싸여 진주인 양 빛난다.

 

아득한 수평선으로 달리는 눈동자

거만한 여왕같이 담은 입술에도

 

그대의 머리카락, 가락 가락에도

태풍은 머물러.......

 

때로 지긋이 눈을 감으나,

그것은 설레는 가슴의 드높은 가락이어니

 

알뜰히도 못 잊는 꿈이기에 그대는

더 화려한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고 싶었구나.

 

그러나 ' 때' 는 그대의 시치스런 환상 위에

언제까지나 미소만을 던지지는 않았다.

 

드디어 운명의 날은

1941도 다 저물어 12월 8일.

 

아하, 이 어찐 폭음이뇨, 요란한 폭음소리!

듣느냐, 저 장쾌한 세기의 멜로디를!

 

저 푸른 물결 위엔 어느 새 찬란한 불길이 오른다.

비빈 눈으로 바라보기에도 얼마나 황홀한 광경이냐!

 

그러나 노크도 없이 달려든 무례한 방문이기에

연달아 용솟음치는 불기둥에 엉키는 분노는......

 

흑연(黑연)을 뚫고 치솟는 분노 속에 세기의 광명이 번득거려

아아, 장엄한 역사의 전야(前夜)! 태풍은 드디어 터지도다!

 

*문예(1954.1) 수록

제 2차 대전의 원이니 된 일본의 기습공격을 소재로 한 시.

*주제는 세기적 진주만의 모습.

*감람: 푸른 쪽빛

 

 

<하 늘>

 

하늘은

바다,

나는 바다를 향해 선 위대한 낭만주의자다.

 

예서 한번 후울쩍 다이빙을 한다면

구름은 물거품같이 발길에 채여 부서질지 몰라.

별들이 조개같이 손아귀에 쥐여질지 몰라.

 

창망(蒼茫)한 대기의 정기(精氣)을 움켜

눈을 씻고 이제<영원>과 마주섰노니......

 

*문장 6호 (1939.7) 수록

<밤>과 같은 계열의 작품이다.